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는 수련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전공의 특별법’을 추진 중이다. 전공의들이 근로기준법의 상한 제한을 초과한 근무시간이라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공과와 병원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들에게는 ‘먹고, 잘 시간도 없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야 하고, 이틀에 한 번꼴로 야간당직을 서는 이들이 전공의이기 때문이다. 내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외과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 하루일과를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전공의들의 하루는 이른 아침에 시작해 환자 상태 확인 및 회진, 컨퍼런스, 각종 검사 시행 등으로 녹초가 된 늦은 저녁에서야 끝이 난다.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 내과 전공의 A씨(레지던트 2년차)의 하루 일과는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 기상으로 시작된다. 출근시간은 7시이지만 환자 파악을 위해서는 보통 6시 30분까지는 병원에 와야 한다. 레지던트 1명이 주치의를 담당하고 있는 중환자는 6명~10명으로 지난 밤 사이에 환자에게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상태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어 오전 8시에는 30분가량의 컨퍼런스가 진행된다. 환자상태 보고는 물론 최근 저널에 실린 이슈 등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자리다. 이후 일정은 오전 정규회진으로 중환자실은 1명의 교수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여러 번 회진을 돌게 된다.
회진이 끝남과 동시에 환자 처치, 의무기록 작성,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입원한 환자 확인,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들에 대한 집중치료실(ICU) 전동 등의 업무가 이어진다.
집중치료실에서는 환자에게 기관내삽관(Intubation), 중심정맥관 삽입(C-line) 등의 처치가 이뤄지는 가운데 병동에서 심폐소생술(CPR)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도착해 CPR 팀을 지휘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또한 오후에 교수 별로 이뤄지는 회진도 틈틈이 챙겨야 한다.
이 같은 업무로 출근한 지 12~13시간이 지나가고 퇴근 시간인 오후 7시가 된다. 하지만 오후 중환자실 면회시간이 오후7시 30분부터 8시까지이기 때문에 퇴근은 불가능하다. 면회시간 동안 보호자와 면담을 진행하고 오후 8시가 넘어서야 그는 퇴근준비를 한다.
그나마 퇴근을 할 수 있는 것도 당직이 아닌 날이어야 가능하다. 당직 날에는 앞의 일과를 소화한 이후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새 환자들을 지켜봐야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외과 등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 산부인과 B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는 오전 6시 30분에 눈을 뜨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다. 늦어도 7시까지는 병원에 도착해 입원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아침회의와 회진에 참석할 준비를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회진이 끝난 이후부터는 외래 환자의 초음파 검사 등은 물론 응급실과 분만실에 대기 중인 환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검사실, 수술실을 뛰어다녀야 한다.
특히 산부인과는 ‘산모’라는 환자 특성상 정상 분만을 하더라도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는 “분만을 앞 둔 산모에게 출혈이 있어 계속 옆에 붙어서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난소에 혹이 발견된 응급환자가 들어오거나 분만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고 전했다.
“식사는 틈날 때 챙겨먹고, 이틀에 하루 야간당직”
상황이 이렇다보니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도 제대로 된 식사 한 번을 하기 힘든 것이 전공의들 현실이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C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을 오후 8시가 넘을 때까지 돌본다. 하루에 100여명의 환자들이 몰려오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점심은 물론 저녁 시간은 당연히 따로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D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 역시 “환자가 몰리면 점심을 거르는 경우도 많다.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기 전 까지 후다닥 먹고 돌아오기도 한다”며 “보통 식당에 내려가더라도 15분 안에 식사를 해결하는 편이다. 그마저도 식사 도중 응급환자가 들어오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수저를 던져놓고 뛰어 올라와야 한다”고 소개했다.
무엇보다 소위 ‘퐁당퐁당’이라고 불리는 하루걸러 하루 돌아오는 야간당직도 곤욕이다. 인력이 부족한 병원과 전공과에서 당직은 하루 종일 식사를 챙길 시간도 없이 일한 후 휴식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전공의는 “환자가 없을 때는 2~3시간씩 눈을 붙이기도 하지만 인턴에게 잠깐 자고 오겠다고 한지 10분 만에 응급환자가 들어오기도 한다”며 “경련, 심장마비가 온 환자가 있으면 제세동기로 전기충격을 주는 처치를 하다 눈 한번 못 감고 밤을 홀딱 세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당직이 아닌 날이라고 해도 응급환자,응급수술이 생기거나 컨퍼런스 발표 및 논문 준비 등으로 쉬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산부인과 B 전공의는 “산부인과를 기피하다보니 병원에 있는 전공의가 2명밖에 없다. 당직이 아닌 날 응급수술을 해서 쉬지 못하더라도 다음날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며 “이런 상황에 처하면 70시간이 넘게 병원에서 환자를 봐야하는데 체력이 한계에 부딪히다보니 ‘이러다 사고 나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내과 A 전공의 역시 “당직이 아닌 날(오프)이라고 해도 보통 잠을 자거나 컨퍼런스 발표 및 논문을 준비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실질적으로 수련기간동안 개인적으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개인시간이 거의 없다보니 전공의들은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고, 가족들에게 인내와 희생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응급의학과 C 전공의는 “이미 인간관계는 단절됐다”며 “같은 상황에 놓인 전공의들이 아닌 이상 친구들이 매일 바쁘다는데 이해해 주겠느냐”고 말했다.
전공의 가족들도 수련기간 동안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충청도 소재 E대학병원 외과 레지던트 2년차 전공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며 “워낙 바쁘다 보니 무엇인가를 함께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혼식, 아이 돌잔치는 모두 아내가 준비하고 나는 행사 당일 몇 시간 몸만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밝혔다.
토요진료 확대시행…업무 허덕이는 전공의
이 같이 하루 24시간을 촉박하게 살아가는 전공의들에게 최근 토요진료를 도입·확대하고 나선 대형병원들의 결정은 청천벽력이다.
교수의 외래진료가 늘어난 것이지만, 사실상 보조업무를 비롯해 늘어난 환자에 따라 시행되는 검사·치료·입원·수술보조 등은 고스란히 전공의 업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토요진료를 시행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은 전국 44곳 중 31곳에 달한다. 삼성서울병원이 8월부터 시작했고 '빅 5 병원‘ 중에서는 서울아산을 제외한 4곳이 모두 토요진료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전공의 보상은 따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토요진료를 시행 중인 병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전공의가 대전협에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해오기도 했다.
대전협 조민수 정책이사는 “외래진료는 교수님이 담당한다고 하더라도 교수님 중에는 진료보조를 위해 전공의를 1명씩 데리고 진료를 보기도 한다”며 “외래에 온 환자가 입원하게 되거나 향후 수술을 받게 되면 해당 업무는 전공의에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조 정책이사는 “간호사 등의 의료 인력은 추가 업무로 인해 근무시간이 늘어나면 이에 따른 수당을 받지만 유독 전공의에게는 보상 없이 업무만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전협은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주당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전공의 특별법’을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실과 추진 중이다.
사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40시간의 노동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을 포함해 최대 주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공의 특별법의 주 80시간 근무는 100시간 가량을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공의들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전협 장성인 회장은 “전공의 특별법은 적어도 전공의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수련환경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