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이 앞다퉈 긴축재정에 나서고 있다. 사무용품에서 절전에 이르기까지 비용 줄이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철 대형병원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에너지 절감이다. 병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대상이다.
병원계가 이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는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다.
환자 유입이 정점을 찍은 데다 내년 상급병실료와 선택진료비 축소가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조만간 3대 비급여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으로, 대형병원의 출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상장비 수가 인하와 초음파 급여화 등 수입 하락이 현실화되기도 했다. ‘진료 블랙홀'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무섭게 몸집을 키워온 대형병원에 한파가 불어오고 있다.
빅4 병원도 비용절감 예외없어
지난해 빅4 병원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서울아산병원도 긴축재정에 나섰다. 사실상 준(準)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은 매년 연말 호텔에서 열었던 교수 송년회를 올해 취소했다. 간호사 등 직원들에게 제공한 일부 비용도 중단했다. 수익성이 예년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의 수익성을 분석하는 법이 다양하다 보니 뭐라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우리 병원도 예년보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유수 의료기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때 대학병원을 지배하던 성장론이 멈추고 비용절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국내 최고 의학교육기관인 서울대병원이 올해 600억원의 적자를 예상했다. 우리나라 대표 의료기관이 잿빛 미래를 예고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해와 올해 예상적자를 합하면 그 규모가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병원은 이미 전사적인 경비 절감에 들어갔다.
총무부와 시설자재부, 교육연구부, 원무부, 홍보부 등 부서별로 10% 경비를 절감해야 할 상황이다. 지하 6층 규모의 주차장 확장공사도 무기한 연기했다. 병원은 비상경영에 반발한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는 등 경비 절감에 따른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에너지 절감에 주목했다. 병원은 현재 ‘끄Go, 빼Go, 걷Go’를 중심으로 한 ‘3Go 캠페인’을 전개 중이다.
쓰지 않는 컴퓨터나 사무실 전등은 반드시 끄도록 하고, 퇴근 한 시간 전부터 개별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수전력이 없도록 전자제품 전원 종료 시 전기코드를 빼도록 했다. 병원 직원들은 3개층 이하는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병원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노후장비도 교체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회전문을 통해 일정한 냉난방 온도를 유지하는 등 에너지 절감 정책으로 연간 5억원가량의 전기료를 아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 절감은 병원의 연말 분위기를 사라지게 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매년 설치하던 크리스마스 트리를 올해 설치하지 않았다. 또 전구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전구로 교체 중이다. 겨울철 실내온도는 18℃~20℃를 유지토록 했다.
이어 퇴근 시 멀티탭과 복사기 스위치 끄기, 점심시간 조명 소등, 빈방조명 끄기, 손에 비누칠 할 때 수돗물 잠그기 등의 세세한 에너지 절감 기준을 마련했다.
병원 측은 “본관에서 종합관으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해 이를 개선하는 공사를 다시해 에너지 손실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수기 타이머 설정에 개인 온열기 수거까지
비용 절감은 자린고비 극약처방까지 나오게 했다. 한양대병원은 병동을 제외한 정수기를 근무시간 외에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타이머를 설정한다. 사무직원의 개인 온열기를 전면 수거하고, 점심시간 절전을 의무화했다.
건국대병원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중반까지 보직자 수당을 보류했다가 최근에야 지급했다. 에너지 절감은 부서별로 이뤄진다. LED 조명을 설치하는 등 부분적인 에너지 절감 운동을 벌였다.
병원은 내년 예산에 비용 절감 항목을 포함할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재정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피력했다.
인하대병원은 최근 5년간 매해 10%씩 비용절감을 독려했다. 이면지를 활용하는 등 고전적인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NMC)은 비용 절감을 다른 시각으로 돌파할 계획이다.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단순한 재정 절감보다 효과적이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다.
올해 EMR(전자의무기록)을 도입함에 따라 의무기록과 직원이 22명에서 11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인원은 타 부서로 재배치했다.
보험심사팀도 전산화에 따라 인원을 1/3로 축소했다. 기존 인력은 원무팀으로 배치했다. 물품구매를 외주로 돌리는 등 20억원의 재정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NMC 관계자는 “어려울수록 투자해야 한다는 게 NMC의 기조”라며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게 결국 재정을 절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병원의 마른수건 짜내기식의 긴축운영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병원의 주요 수익원인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가 정부 정책에 따라 축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3대 비급여 개편안을 추진하면서 병원 손실분을 일부 언급했다. 병원계는 대형병원들이 많게는 수십억원의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정부가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확대를 허용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에 일부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한 대학병원 경영팀 관계자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수입 감소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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