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보수가 지급구조 '법률적 단상'
고한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찬란한 아침 대표)
2014.04.09 18:14 댓글쓰기

[특별기고]허위·과잉진료 및 보험사기 등으로 인한 보험금 누수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에서 개정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하 ‘자배법’)에 따라 지난해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의 심사·조정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기존에는 의료기관이 진료수가를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30일 이내에 그 청구액을 지급해야 함이 원칙이고, 보험회사가 60일 내에 진료수가분쟁심의회에 심사청구를 하는 경우에도 80/100에 해당하는 금액은 미리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반면, 개정된 자배법에 따르면 보험회사가 30일 이내에 진료수가를 지급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의료기관이 청구한 액수가 아니라 전문심사기관인 심평원이 심사한 수가를 지급하게 된다.

즉, 의료기관과 보험회사 사이에 지급액을 조정할 수 있는 ‘심평원’이라는 기관이 새로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행 몇 달 후 행정적인 혼란은 줄어들었을지는 모르나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여전히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 듯하다.

 

건강보험과 자동차 보험은 엄연히 그 성격이 다르다.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보험으로 환자가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비용효과적인 치료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동차 보험은 가해자가 있는 교통사고(불법행위)에서 피해자의 완전한 피해회복, 즉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는 전손해의 배상을 목적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보험환자의 경우 물리적 충격에 의한 피해로 복합성과 중증도, 후유증상이 심각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초기에 정밀한 검사와 관찰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건강보험심사업무에 준해 자동차보험진료수가를 조정하는 경우, 자칫 자동차사고 환자의 치료를 위축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의료기관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심평원은 자동차보험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감안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현재 자동차보험심사업무 위탁을 둘러싼 논쟁은 주로 ‘진료수가 심사기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배법, 가장 주된 입법 목적인 피해자 보호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필자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보험회사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기관이 자동차보험진료수가 ‘지급액’을 조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원칙적으로 자동차보험관계는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보험회사 사이의 법률관계이다. 의료기관은 환자와의 진료계약에 따른 진료비를 환자로부터 지급받고, 환자는 그 치료비를 상법에 따라 보험회사에게 직접 청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에서 원활한 피해회복을 돕기 위한 취지에서 자배법은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대(對)환자 직접청구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지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료기관이 갖는 진료비청구권이라는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그 제한의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은 적정하며,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지 아니하여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가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논거 중 한 부분을 살펴보자. “의료기관은 자신의 전문적 판단에 의해 명백히 교통사고환자 부담에 속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험사업자에게 진료수가를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라 할 것이고 이러한 의료기관의 판단은 원칙적으로 존중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업자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을 의료기관이 부당하게 적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런 때 보험사업자는 그 지급청구일부터 60일 이내에 위 심의회에 그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심사청구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의료기관의 지급청구액을 삭감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은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정당한 진료수가를 보장받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 즉, 진료비 부담자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의료기관이 청구한 지급액을 보장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재산권의 과잉제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자배법 지급구조에는 자연스레 의문 부호가 떠오른다.


심평원이 전문심사기관이라고는 하나 보험회사와의 사적인 계약에 따라 보험회사로부터 심사업무를 위탁받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기구’가 아니라 보험회사 수탁자이다.


따라서 심평원이 심사한 액수를 지급액으로 결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이 청구한 지급액을 삭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아니하며, 여기에는 분명히 위헌적 요소가 존재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의료기관은 자동차보험관계에서 제3자이다. 그럼에도 진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할 수 없으며, 보험회사에 청구한 금액도 지급받기 어렵게 됐다.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로부터는 피소당할 위험을, 환자로부터는 적정진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료분쟁에 휘말릴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부분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이같은 구조는 의료기관의 자동차보험환자에 대한 진료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환자의 손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자배법의 가장 주된 목적은 피해자 보호다. 허위·과잉진료, 보험사기 방지라는 표제 아래, 오히려 가장 주된 입법목적인 피해자 보호를 간과하는 것이 아닐지 다시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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