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늦어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의사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 사망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잇달아 내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춘천지방법원은 환자 A씨가 넘어져 머리를 다쳤는데도 19시간이 지나서야 CT촬영을 한 병원장 B씨에 대해 A씨 사망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지난 6월 서울대병원이 수술 지연으로 인한 환자 사망에 무죄라는 판결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결과다.
먼저 일반외과 전문의인 병원장 B씨는 술 마신 상태의 A씨가 병원 앞 휴게소 의자에서 일어나 걷다가 뒤로 넘어져 머리를 지면에 부딪치자, 너무 늦은 시간에 A씨를 입원실로 옮길 경우 병실을 함께 쓰던 다른 환자들의 수면에 방해될 것 같아 응급실로 옮겼다.
이후 B씨는 수액 공급 등으로 A씨의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의식 상태를 확인한 뒤 머리 부위에 대한 CT촬영을 19시간이 지나서야 촬영, 조치 등을 취했지만 이후 환자는 경막하출혈로 사망했다.
이에 병원 측은 A씨에 대한 CT촬영 등을 늦게 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업무상과실치사 소송에 휘말렸지만 최종적으로 법원은 병원 측의 무죄를 판결 내렸다.
재판부는 "B씨는 A씨가 넘어진 이후 약 19시간이 경과된 시점에 비로소 CT촬영 등을 실시한 점과 관련, B씨는 A씨가 넘어진 이후 뇌손상의 중요한 지표인 구토증상을 호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의식 수준도 넘어지기 전과 대비, 큰 변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B씨의 진료 경과와 치료에 대한 보호자들의 협조 정도 등에 비추어 보면 의사 B씨가 환자 A씨에 대해 보다 빨리 CT 촬영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의료과실로 단정할 순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씨가 신경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로서 신경외과적 영역의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곤란한 상황이었으므로, 이러한 경우 B씨로서는 A씨를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전원 조치할 의무가 있다"며 병원의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지난 6월 서울대병원의 수술 지연에 대해 환자 사망 책임이 없다고 판시된 내용과 흡사하다.
당시 서울대병원은 거대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출혈환자에 대해 출혈 후 약 7시간, 응급실 내원 약 5시간 경과 후 개두술을 시행해 환자가 사망했지만 병원 측의 의료과실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즉 의료진이 빨리 응급 개두술을 시행했어야 한다는 전제만으로 환자 사망책임과의 인과관계를 성립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당시 대법원은 뇌출혈 응급수술을 받은 뒤 사망한 환자의 가족들이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고심에서 서울대병원의 과실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앞서 환자 측은 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에 대해 의료진이 신속히 수술을 진행하지 않아 사망했다며 6억9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사망한 환자는 지난 2006년 1월 서울대병원에서 좌측 중대뇌동맥 거대동맥류 결찰술을 받고 생활하던 중 2008년 3월 사우나를 방문, 의식을 잃어 오후 서울의료원 응급실을 내원했다.
당시 서울의료원 의료진은 뇌동맥류 파열 소견으로 환자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하고 1차 뇌 CT촬영을 시행해 과거 결찰술 부위에 약66㎖ 정도의 혈종을 발견했다.
이에 의료진은 기관내 삽관과 뇌실배액술을 시행하고 혈관조영술 등을 진행했지만 3차 CT 검사 후 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3개월이 지나 사망했다.
이를 두고 1심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가능한 빨리 응급 개두술을 시행해 혈종 제거와 뇌혈관우회술을 실시할 의무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의료진의 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다시 원심이 파기됐다.
대법원은 "의료진은 환자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 보존적 치료를 거쳐 출혈 후 7시간, 내원 후 5시간 지난 시점에 수술한 것이 진료 방법 선택의 합리적 결정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