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처럼 섞을 수 없는 관계였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개원가의 접점을 찾기 위한 의미있는 상시 협의체가 구축됐다. 올해 4월부터 벌써 4번의 회의를 가져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개원가는 심평원에 상당한 불만이 내재됐다. 진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과잉청구 등을 이유로 무차별적인 삭감 내역이 주된 이유였다.
한 개원의는 “다수의 개원가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심평원의 행보에 나날이 불만이 쌓아가고 있다”며 “실질적인 보상 없이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어떤 의사가 동조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심평원도 할 말은 있다. 자문위원단을 운영하면서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고민해왔고, 의견 수렴에 항상 열린 자세로 임했다는 것이다.
또한 심평원은 올해부터 의료심사평가 선진화 과제를 내걸고, ▲의료보장성 강화 ▲체계 효율화를 통한 지속 가능성 제고 ▲가치 기반 심사평가체계 구축 ▲건강 질 향상 보건의료체계 마련 ▲참여중심 투명성 제고라는 5대 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심평원은 “상시협의체는 의료기관과 심평원의 사이가 일방적 관계가 아닌 파트너쉽에 기반한 협력적 관계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의사의 진료 자율성을 보장하고, 의료기관이 자율적인 서비스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양 측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실질적인 고리는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올해 첫 출범한 상시 협의체가 어떠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지 주목되는 요인이다.
이번에 구축된 상시 협의체는 천식·COPD를 중심으로 국내 의료수준을 높이는데 집중할 예정이다. 심평원, 대한개원내과의사회, 대한가정의학회,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대한천식알레르기학회가 참여했다.
지난 4월 첫 모임을 시작으로 5월 약제 급여 기준 개선 논의, 6월 COPD 약제 급여 기준 개선 및 확대, 8월 천식 · COPD 급여 기준 의견 수렴 및 자문 등을 잇달아 진행했다.
상시 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COPD 진료지침이 나온지 벌써 수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개원가에서는 활용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가장 큰 원인은 병원 수익 때문에 20년 전 치료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원가만 탓할 문제는 절대 아니다. 심평원도 개원가에서 교과서적인 진료를 열심히 할 경우 수익이 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고혈압 관련 특정약을 다른 질병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하게 병명에 고혈압을 기재할 수 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환자는 비급여로 처방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부담이 늘게 된다.
약값을 더 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처방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불편해진다. 이 같은 불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상시협의체는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나갈 예정이다.
이 교수는 “과거 천식 진료 방식이었던 고형제 처방도 비슷한 경우다. 최근에는 흡입제가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일부 개원가에서는 여전히 고형제를 처방하고 있다”며 “이는 흡입제는 환자에게 별도의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데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협력과 신뢰관계 회복을 위한 물꼬를 트게 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기존에 구축된 진료지침을 개원가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에 주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