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차근호 기자 = 부산대병원 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노조가 불법 의료 실태를 공개하며 병원 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25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부산대병원 노조가 조합원 2천여명이 참여한 '불법 의료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 행사에서 하얀색 가면을 쓴 현직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4명이 불법 의료 실태를 밝혔다.
자신을 병동 간호사라고 소개한 A 간호사는 자신이 직접 의사를 대신해 처방을 내렸던 사례를 공개했다.
A 간호사는 "10여 명의 환자 처방을 내려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했더니 '전날 처방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며 "내일 아침이라도 처방을 내달라고 하니 '내일도 어려우니 선생님이 직접 처방을 내달라'며 대리처방을 요구한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종을 앞둔 환자가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 생겨 의사에게 처방을 요구하자 의사가 '어렵다'고 답변했다"면서 "결국 제가 중환자실에 연락해 용량을 알아보고 직접 처방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A 간호사는 "투석 환자들은 콩팥 기능이 일반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약용량을 잘 확인해야 하는데, 매번 간호사들이 처방하다 보니 약물이 과하게 처방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면서 "수술 부위 체크도 의사가 할 일인데 간호사들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래에서 일하는 B 간호조무사는 "초진 환자가 내원하면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검사부터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과정에서 검사 처방을 내기 위한 환자 진단명을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정하고 입력한다"면서 "우리가 낸 진단명이 제대로 확인되거나 수정되지 않은 채 환자 진료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C 간호사도 "의사 업무인 의무기록지 작성, 투약, 수혈기록, 처치, 수가 입력이 너무나도 당연히 간호사가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면서 약물 처방 등 각종 오류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고스란히 그 책임을 간호사가 떠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술방 진료 보조 간호사를 말하는 일명 'PA간호사'인 D 간호사는 "수술방에서는 수술 어시스트를 하고 병동에서는 수술환자 드레싱과 절개 부위·상처 관리, 입원 환자에 대한 수술 설명, 동의서 서명받기, 집도의 서명까지 제가 알아서 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이들 증언 외에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증거 조사 사례 등 20여가지 목록도 공개했다.
해당 내용에는 '이식 수술할 때 간호사만 두고 의사가 자리를 비운 사례', '방사선사가 검사 도중 약물을 투여했다가 약물 부작용으로 심정지가 온 사례', '조혈모세포 이식을 의사 없이 진행한 사례', '암 환자의 항암주사 처방을 PA간호사가 한 사례' 등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부산대병원 노조는 "병원 측이 불법 의료 근절을 위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수집된 증거를 전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불법 의료행위에 대한 보건복지부 차원의 실태 조사를 의뢰하고 교육부 차원의 감사, 국회 교육위 차원의 감사,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소 등도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조는 '비정규직의 직고용', '인력 충원', '불법 의료 근절'을 3대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조는 2018년 노사 합의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유명무실한 '준법 의료 테스크포스(TF)팀'을 기존에 합의한 대로 2개월마다 열고, 불법 의료 근절을 위해 노사가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불법 의료 근절에 대해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는 부산대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며, 점진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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