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 지역 의료 붕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의대 정원 증원 논의로 의료계 뿐 아니라 온나라가 갑론을박 중이다.
"국민 생명·안전 지키는 의사들 목소리 귀 기울여 달라"
이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현재 6:4 정도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정원을 5:5로 조정하고, 내년에는 우선 5.5:4.5로 조정한다고 최근 알려졌다.
현재까지 비수도권 어떤 지역에서는 그 지역 전체 수련병원에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자는 0명이라고 한다. 작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대량 미달 사태에 이어 올해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마저 걱정되고 있다.
지난 10월 26~27일 대한응급의학회 추계학술대회를 통해 전국 여러 수련병원의 지도전문의들인 응급의학과 교수들 간 수많은 소통이 이뤄졌다.
현재까지 내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 상황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다. 서울 소재 대형 대학병원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나은 듯 하지만, 지역의 거점국립대학병원이라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은 2~3명 선이다.
한 명도 지원자가 없는 병원도 많고 심지어 위에서 언급했듯 그 지역 전체의 모든 수련병원에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자가 없는 지역까지 발생하고 있다.
인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간은 90% 이상의 전공의 지원율이 유지됐던 응급의학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태원 압사 사고·10대 환자 추락 사건→응급실 의료진 ‘책임’ 전가시키면서 공분
벌써 1주기가 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당시 출동했던 DMAT(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을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당시 언론 질타와 국민적 여론에 국가수사본부의 해당 응급의학과 선생님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안타까운 한 청소년의 추락 사망 사건도 있다. 최초 응급실 내원 시, 활력 징후가 정상이고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상태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판단해 해당 병원에서는 정신과 진료가 어렵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와 외상 치료가 가능한 상급병원으로 정상적으로 전원 조치했다.
이후 사망이 발생하자 보건복지부가 조사 후 기관 징계로 마무리한 사건에서, 유족의 고소, 고발 없이 경찰이 스스로 인지 수사 형식으로 뒤늦게 수차례 수사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를 앞두고 이런 내용들이 알려져 의료계 여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자 어영부영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는 것도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다.
생명을 지키는 최일선, 응급실에서 그리고 재난의료 현장에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가족들과 설날, 추석 연휴 한번 남들처럼 여유롭게 보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성공한 개원의사 같이 많은 수입을 벌지도 못한다.
그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는 자긍심으로 야간과 휴일 응급진료에 매진했건만 걸핏하면 응급실 폭력이나 민원에 시달리다 못해 사망 환자라도 발생하면 민형사상 소송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현실은, 심지어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신 ‘간호법’이나 의대 증원 소식에 묻혀 일반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의료인 면허 결격 사유 확대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소위 의사면허 취소박탈법까지 제정돼 의사 면허까지 취소 박탈되게 생겼으니, 과연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지원하려는 인턴 선생들이 적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최근 ‘응급실 뺑뺑이’라며 보도된 응급의료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여러 대책을 발표했는데, 그중 하나는 “의사 없다고 환자 안 받으면 불이익을 입고 의사가 없어도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어이없는 안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뉴스 보도 이후 바로 다음날 보건복지부(응급의료과)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응급실 수용곤란 고지 관리 표준지침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지만 응급의료 현장의 불안과 불만은 임계치를 넘었다고 하겠다.
애초 응급의료 선진국이라고 하는 몇몇 외국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응급의료 자원과 낮은 의료 수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응급실 현장에서 야간과 휴일에 응급 진료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전문가와 관료들에 의해 탁상공론식 해법으로 오히려 응급의료 현장에 더 혼선과 분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안함 임계치 넘어, 30~40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조용한 사직' 러시
실제 한창 응급실 현장에서 응급 환자 진료에 매진해야 할 30~40대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조용히 사직하는 길을 택하는 흐름이 뚜렷이 생겨나고 있다.
과도한 정부 정책과 날로 엄중해지다 못해 가혹해지고 있는 사법부의 응급의료에 대한 형사적인 책임 추궁과 인신 구속, 천문학적인 민사적 배상, 그리고 이제는 면허 취소, 박탈의 위험에 더 이상 응급의료 현장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임에도 야간과 휴일 응급실 진료를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하고, 의원을 개원하거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봉직하며 평일 낮 근무만 하는 안온한 삶, 가족과 여유를 즐기는 삶을 추구하려는 물결이 거세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자가 줄고, 이미 배출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마저 응급의료 현장에서 떠나게 하는 정책을 계속 발표하고 진행하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현실을 알고나 있는가? 행정부 뿐 아니라 입법부인 국회, 사법부인 법원은 책임이 없는가?
지방 소멸이 아니라 세계적인 저출산 흐름 속에서 국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지만, 그보다 앞서 응급실 뺑뺑이가 아니라 응급실 폐쇄의 아비규환이 멀지 않아 이 땅에서 벌어질지 모른다.
늘 그렇듯 힘 있고 돈 있고 권력 있는 분들은 어떻게든 자신과 가족의 응급 상황에서 부족한 응급실 환경, 부족한 응급의학과 의사 속에서도 어떻게든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보통의 대다수 국민들은 어떻게 될까?
필수 의료 대책 중에서도 소아청소년과에 대해서는 수련병원 전공의 뿐 아니라 전임의(전문의)에게도 월 10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초진료도 인상했고, 무려 10여년만에 그렇게도 보건복지부가 다른 임상과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여러 이유로 반대했다던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제도 확대도 대책으로 나오고 있다.
이런 정도의 대책도 응급의학과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에서 아무 관련 발표가 없다. 오히려 각종 법과 제도로 옥죄려고만 하고 있으니 당연히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자가 없고,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응급의료 현장에서 이탈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우리 국민들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응급의료 현장의 전문의, 전공의 선생님들을 존중하고 제발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달라.
응급의학과 전문의, 전공의 선생님들이 마음 놓고 자기 실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응급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응급의료 환경을 만드는 입법과 대책을 시급히 만들어 시행해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
사법부도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응급의학과 의사에 대한 과도한 형사적 책임 추궁과 인신 구속, 민사적 배상판결도 이제는 돌아볼 때가 됐다. 국민들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 응급실이 무너지지 않도록 응급의료를 지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