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 향정신성 약품을 불법으로 투약하고 그 영향으로 사망하자 시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살았던 의사와 관련,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가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면허 재교부를 위한 요건 중 하나인 ‘개전의 정(잘못을 뉘우치는 마음가짐)’이 뚜렷하지 않다는 보건복지부의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
1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 4-1행정부(판사 권기훈)는 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면허취소 의료인 면허재교부 거부처분 취소 청구의 소(訴)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 A씨는 지난 2012년 7월 30일 오후 7시경 동료 의사들과 술을 마셨다.
이후 같은 날 오후 11시 지인 B씨의 부탁을 받아 향정신성의약품 미다졸람 등 13개 약물을 섞어 투약했다.
B씨는 약 2시간 만에 약물 부작용 등 영향으로 호흡이 멈춰 사망했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병원에서 불법으로 향정신성의약품 및 각종 마취제 등을 투여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한 사실이 발각될 경우를 우려해 시신을 차에 실은 뒤, 한 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떠났다.
A씨는 2013년 마약류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 사체유기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300만원을 확정받았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8월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A씨 의사 면허를 취소했다.
복역을 마친 A씨는 의사 면허 재교부 제한 기간 3년이 지난 2017년 면허 재교부를 신청했다. 하지만 복지부가 이를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면허가 취소된 지 3년이 지나 재교부 제한 기간이 지났으며 재교부 신청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며 “복지부는 면허 재교부 신청을 불승인하면서 처분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였던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의사면허를 다시 발급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건 이후 10년 동안 충분히 뉘우치고 반성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1심 재판부는 “A씨가 비록 중대한 잘못을 했지만 오랜 기간 참회한 만큼 의료 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게 오히려 의료법의 취지와 공익에 부합하다”고 판시했다.
“범행 중대성 및 의료법 목적 등 고려…면허재교부 공익 부적합”
하지만 2심 재판부 판결은 달랐다.
법원은 “의료법은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말하면서도 그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의료법 목적 등을 종합해 해당 요건 판단 재량권은 보건복지부에 부여됐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 처분 이후 업무 외 목적으로 약물 투약 행위 도중 환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 면허를 재교부해준 사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재판부는 범행의 중대성과 의료법 목적 등을 고려했을 때 A씨의 면허재교부가 공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A씨는 업무 외적인 목적으로 향정신성의약품을 포함한 여러 약품을 무분별하게 혼합하여 투약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고 사체를 유기해 죄질이 중하다”며 “원고의 범행은 치료과정에서 과실로 발생한 일반적인 의료사고와 본질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합적인 범행의 경중을 고려해 보았을 때 A씨의 의사면허 취소는 공익에 반하지 않고 의료법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덧붙이며 1심 판결을 취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