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이슬비 기자] 간호사의 55%가 본인 권한 및 책임이 아닌 타 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분명한 업무 구분이 최근 문제로 떠오른 대리수술 등의 불법의료행위를 유발하는 바, 업무분장을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은 최근 ‘2021 정기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해당 조사는 금년 3월 12일부터 한 달 간 전수조사 실시됐으며, 4만3058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약 절반(45.8%)이 ‘본인 권한·책임을 벗어난 타 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세부적으로는 ▲‘업무 과다’ 38.6%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다’ 35.8% ▲‘업무 밖 일을 수행하고 있다’ 18.7%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의료진 중 간호사 업무 부적절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들의 55%가 타 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는데, 특히 야간근무 전담 간호사의 절반(46.6%)이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응답하며 근무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업무량이 근무시간 내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응답은 46%에 이르렀는데, 3교대 근무 간호사의 동의율이 가장 높았다. 다른 근무 형태 간호사에 비해 적게는 8%p, 많게는 약 13%p 가량 높았다.
‘업무 범위가 명시된 문서가 없다’는 응답도 14.8%에 이르렀는데, 이는 현장에서 명확한 업무 분장이 없는 기관이 더러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두고 보건의료노조 사무처 관계자는 “이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의 주요 원인이다”며 “낮은 업무 숙지로 인해 의료·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하며 고유 업무와 상관없는 업무지시·부당노동 등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실제 업무 구분 체계성에 따른 직장생활 만족도·번아웃 등을 살펴본 결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라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이 ‘직장생활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평균 56.2%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평가한 간호사들 만족률은 39.2%에 그쳤다.
업무 만족도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라고 답한 간호사들의 업무 만족률은 평균 77.7%였지만, 반대의 경우 평균 55.9%였다.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은 반대 경우보다 번아웃 상태가 더 심각했는데, ‘일을 자주 그만두고 싶다고 느낀다’는 응답이 각각 82.9%, 67.6% 등으로 차이를 보였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번아웃은 의료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업무 구분이 비체계적일수록 집중의 어려움·이직 의향 등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의료서비스의 질과 의사와의 소통·협업 등의 면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대리수술 등 불법의료행위 논란···“알고도 면허 밖 업무 수행해야 하는 현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지난 5월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간 적발된 대리수술 건수는 112건이었다. 금년은 특히 전문병원에서 관련 논란이 많이 불거졌다.
금년 5월 인천 소재 척추전문병원에서 대리수술 의혹이 불거져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어 6월 광주광역시 한 척추전문병원에서도 간호조무사가 피부 절개·봉합 및 핵심 의료행위를 대리수술했다는 내부고발이 제기됐다.
최근에도 서울 某관절전문병원에서 비슷한 의혹이 불거져 압수수색이 이뤄진 상태다.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시켜서도 안 된다.
현장 의료진들은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부지불식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가장 큰 원인은 불분명한 업무 분장이 꼽힌다.
보건의료노조 정책국 관계자는 “의료진이 자신의 업무 성격·범위를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다른 업무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면허범위 내에서 적절히 관리·수행할 여건이 안 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료현장에서 직종 간 업무 범위가 체계적이지 않고 명확하지 않을수록 개개인의 책임과 권한을 벗어난 업무가 늘고, 이는 종종 무면허 불법의료행위를 양산하는 길”이라며 최근 수술실 CCTV 설치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된 만큼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