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확정 판결···의료계 vs 건보공단 '10년 대립' 종료
네트워크병원≠사무장병원 결론, 일방 환수 '제동'···헌법재판소 판결 영향 미칠 듯
2019.07.21 18:43 댓글쓰기

똑같이 면허를 의사가 진료를 하는 병원이 있다. 한 병원의 주인은 면허가 없는 비(非) 의료인이고 또 다른 병원은 면허를 가진 의사가 소유하고 있다. 의료계의 독버섯으로 여겨지는 사무장병원과 개원가의 미운털 네트워크병원의 차이점이다. 그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인이 여러 개 병원을 중복 운영한다는 이유에서 두 의료기관의 성격이 같다고 봤다. 그리고 이를 금지하는 ‘1인1개소법’에 근거해 동일하게 급여환수처분을 했다. 하지만 의료계 입장은 달랐다. 면허가 있는 의료인이 개설한 의료기관과 그렇지 않은 의료기관은 본질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공단의 이 같은 환수처분은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병원을 둘러싼 환수처분에 대해 의료계와 공단은 10년간 의견 차이를 보이며 법정에서 대립했다. 그리고 금년 5월, 대법원은 1인1개소법을 근거로 한 요양급여 환수는 부당하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오랜 싸움에 마침표가 찍히는 듯 했지만 법조계와 병원계에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판결 이후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1인1개소법 위헌 판결에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대법원의 판단 및 1인1개소법을 둘러싼 갈등 양상인 유디치과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공방을 다시금 살펴본다. [편집자주]

 

대법원 “이중개설 금지 위반 이유 환수처분 부당” vs 공단 “모순되는 판결”

 

금년 5월 31일, 대법원은 여러 개의 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인에 이중개설 금지 위반을 이유로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대법원은 이중개설 금지를 정하는 의료법 제33조8항 (이하 ‘1인 1개소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요양급여 환수처분을 받은 A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한 명의 의사가 여러 개 병원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진료비 환수처분을 받은 A병원은 공단을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모두 공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같은 날 마찬가지로 1인 1개소법 위반으로 환수처분을 받은 B병원과 공단 사이에 벌어진 재판에서도 대법원은 병원 측 손을 들어줬다.

 

B병원은 1인1개소법 위반과 관련해 기소유예 판결을 받고 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받은 기관이다. 처분을 받은 B병원은 건보공단을 상대로 환수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판결에 불복한 공단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재판부는 기각 판결을 내렸다.

 

1인1개소법을 둘러싼 공단과 의료계 간 갈등은 지난 2012년 기존 개설만을 금지했던 의료법 제33조8항에 개설 뿐만 아니라 운영 또한 불가하다는 법률조항이 추가되며 시작됐다.

 

개정법에 따라 공단은 한 명의 의사가 여러 개의 병원을 운영하는 1인1개소법을 위반한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 환수는 정당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의사 간 동업은 그간 인정된 부분이며, 설령 현행 의료법을 위반한 것이 맞다 하더라도 정당한 의료인의 진료행위를 부정하며 요양급여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이뤄지면서 앞으로 재판부는 의료계 측 주장에 합치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리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또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1인 1개소법과 의료법 제33조8항도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일부 법조인들은 "모순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김준래 변호사(국민건강보험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료서비스 질이 보장된다면 환수가 불가하다는 판단인데, 사무장병원도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하므로 의료서비스 내지 요양급여 질은 담보된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그런데도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경영하는 사무장 병원에 대해서는 비용을 환수하라고 판단했었기 때문에, 네트워크병원의 환수처분만이 부당하다는 판결은 형평에도 반하는 판단이며, 논리적으로도 서로 모순되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변호사는 앞으로 법적 판단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 개설 운영한 행위’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 판단은 의료인이 개설과 운영을 했다면 의료기관을 여러 개 개설해도 적법하다는 것인데, 개설과 운영의 인정범위에 대한 내용이 없어 앞으로 추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를 도구로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비의료인을 대리인으로 보내서 의료인들을 지휘 감독하는 것도 가능한지를 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만약 이러한 행위가 적법하다고 인정된다면 사무장병원이거나 사무장병원 보다도 더 비난가능성이 중한 것인데, 이러한 운영도 가능한 것인지 향후 법원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反유디치과법, 1인 1개소법 두고 희비 엇갈린 치협과 유디치과

 

이번 대법원 판결에 누구보다도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유디치과와 치협이다.

대표적인 네트워크병원인 유디치과는 그간 박리다매식 진료수가로 개원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으며, 치협은 이러한 유디치과가 전반적인 진료 질을 하향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유디치과와 치협 간 갈등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의료법 개정에 따라 기존에는 의료기관 공동개설만을 금지됐던 것이, 여러 의사가 서로 다른 지점을 맡는 공동운영 형태도 불가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법 개정 배경에는 유디치과의 박리다매 경영방식을 문제 삼던 치협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치과계에서 의료법 제33조8항을 ‘反유디치과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치협은 줄곧 1인 1개소법을 옹호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의료인이 1개 병원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병원을 운영할 경우 과잉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또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장소가 아니라 영리만을 목적으로 한 기관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주장에서다.

 

치협은 또 유디치과와 같은 네트워크병원의 저수가 정책에서도 날선 비난을 이어왔다. 김세영 前 치협회장은 “저수가 치료를 내세워 전국으로 확대돼 가는 유디치과를 저지하겠다”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 개정 7년 만에 1인1개소법 위반으로 인한 환수조치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며 치협은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을 방청한 김철수 치협 회장은 “남은 희망은 ‘1인1개소법’을 위반한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 환수근거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 뿐”이라며 “사무장병원과 네트워크 병원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정치권 등에 지속적으로 호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유디치과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로, 네트워크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고광욱 유디치과 대표는 “이번 재판의 쟁점은 '동업이나 의사들 간 협력관계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병원이 반(反)사회적이냐 아니냐'에 맞춰져 있었다”며 “네트워크 병원은 사무장 병원과 달리 의료인이 개설하고 정당하게 진료하는 정상적인 의료기관이란 것을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그간 건보공단은 ‘반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경우’에 환수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들어 네트워크 병원들의 진료비를 환수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네트워크 병원은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고 인정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또 치협과의 갈등 양상에 대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고 대표는 “그동안 치과협회는 네트워크 병원들에 대한 비판을 꾸준히 이어왔지만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며 “앞으로 유디치과는 더 낮은 가격으로 고품질의 진료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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