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 종주단체인 대한의사협회 수장이 바뀌었다. 후보들 중에도 강성으로 평가되던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제42대 대한의사협회장으로 선출되며 의정(醫政) 대립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다가 '입틀막'을 당해 더 유명해진 그는 27일 의협 출입 전문지 기자단과 가진 당선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의료 현안 대응에는 강력하게, 의협 회무는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임기 중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해 기존과는 다른 전략과 한결 강화된 정치력을 발휘하겠다는 전략도 예고했다. [편집자주]
Q. 제42대 의협회장 당선 소감은
평소라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의료계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전공의, 의대생은 물론 중환자나 희귀질환을 담당하는 의사들까지 병원을 나왔거나 나오려는 상황이다.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가 최우선 과제다. 유례없는 투표율과 압도적 지지율로 회원들이 표를 준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에 당선의 기쁨보다 굉장히 큰 책임감을 느낀다. 정부의 무지막지하고 비상식적인 정책으로 의사들이 긍지와 보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의료현안 대응은 강력하게, 대신 의협 회무는 유연하게 운영해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꾸려나갈 계획이다.
Q. 공약 중 가장 먼저 이행할 것은
의과대학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저지다. 우선 의대 증원에 반대해 사직한 전공의들 가운데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지원하려고 한다.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이들을 위해 기저귀와 분유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의협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전공의들을 돕고자 한다. 의대 증원뿐만 아니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도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나마 유지되던 의료체계가 단번에 무너지겠다는 생각만 든다.
Q. 증원 배정이 완료돼 돌이키기 어렵지 않나
대학별 배정안을 보면서 의사들끼리 한 우스갯 소리가 있다. 마치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 지도를 두고 자로 나라의 경계를 나누듯 배정했다는 것이다. 이게 의료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안이냐. 불가능하다. 의과대학은 일반대학과 학제가 다르다. 1년 교육과정 중 단 한 과목이라도 F가 나오거나 평락(평점 이하 점수)을 받으면 해당 학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 장학금을 받고 의대에 입학한 저도 본과 1학년 때 유급을 한 바 있다. 특히 본과 1학년 때 유급이 많이 나오는데, 강의실에 들어가면 자리가 부족하다. 의대는 실습도 중요한데 해부학과 생리학, 조직학, 생화학 실습도 하기 어렵다. 규모가 작은 서남의대도 결국 교수를 구하기 어려워 파행을 겪다가 퇴출됐다. 이게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복지부 공무원들의 망상이다. 저지해야 한다.
"정리해고될 박 차관과 무슨 얘길하냐"
"의협 대표성 논란? 압도적 지지율이 대표성 방증"
"낙선운동 등 국회의원 총선거 영향력 강화"
Q. 정부가 신임 의협회장과의 대화를 제안했는데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복지부 장·차관의 '경질'이 아닌 '파면'을 요구했다. 경질은 공무원 연금을 받지만, 파면은 절반만 받는다. 단순 경질은 부당하다.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산산조각 낸 사람인데 그냥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못한 사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대화 제안 멘트를 아직 못 봤는데, 정리해고될 사람이 그런 멘트를 하는 게 적절한지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집에 갈 사람과 대화할 이유가 없다.
Q. 의협 대표성 논란이 있다. 전공의, 의대생, 교수들 포용 방안은
복지부가 의협이 개원의 이익만 대표한다고 폄하했다. 대표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다양한 직역에서 투표를 했고, 지지율도 높았다. 개원의뿐만 아니라 전공의, 봉직의 , 교수들이 압도적으로 표를 줬다. 제게 투표하기 위해 일부러 회비를 납부한 의사들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대표성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아도 된다. 또한 2020년 투쟁에서 문제가 생긴 원인은 전공의, 의대생들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오해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각 직역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마무리 시점에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결정을 내리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Q. 차기 집행부 구성 원칙은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과 '열정'이다. 10년 전 대한소청과의사회 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 간선제였는데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 회칙을 고쳐 직선제로 바꿨다. 이후 압도적인 지지를 유지했다. 당시 저와 집행부는 의사회 회무 경험이 일천했다. 회의에 가면 그 내용을 녹취해서 듣고 공부했다. 힘든 회원이 있으면 도와주기 위해 밤새 방법을 모색했다.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참 뿌듯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능력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Q. 현 비대위와 관계 설정은
5월 1일부터 회장 임기가 시작된다. 전임 회장이 부재인 만큼 오늘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비대위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지금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니 5월까지 손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앞서 지난주 비대위 회의에서 의협 회장 당선인이 나오면 비대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회장 후보로 나선 분들은 더 이상 비대위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Q. 총파업이나 윤 정부 퇴진운동 계획은
총파업 전제 조건은 두 개다. 전공의나 학생, 교수 중 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전 의사 직역을 동원해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총파업을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다친다는 것은 민형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고발당하거나 행정처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정권에는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어떤가 싶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으로 업무가 정지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된 불행한 역사가 있다. 탄핵은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기회를 줬음에도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땐 선택지가 없다.
Q. 개원의들은 이번 투쟁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전공의 내 두 가지 목소리가 있다. 하나는 개원의들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에게 빌미만 주고 문제가 생기면 전공의에게도 악영향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서 후방 보급을 책임지라는 의견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신들은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느냐는 것이다. 두 목소리 모두 염두에 두고 투쟁 시 전략을 짤 계획이다. 이번에 파업을 한다면 정부에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형태의 투쟁은 지양한다. 전술상 구체적으로 공개하기 어렵지만 기존과 다른 형식으로 모두가 즐기되 목소리는 낼 수 있도록 기획할 것이다.
Q.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총선기획단 운영 계획은
총선에서 지양해야 하는 것은 일방적 지지다. 개혁신당에서 의사 출신인 이주영 후보가 비례대표 1번을 받았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도록 의협에서 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의협의 선거 캠페인은 힘든 의사들의 긍지나 희망을 되살려 줄 수 있는 후보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의사를 때리는 저열한 네거티브로 당선을 꿈꾸는 후보는 적극 낙선운동을 펼칠 것이다. 특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었던 안상훈 씨가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나왔다. 그가 사퇴하지 않으면 당선되지 않도록 최대한 움직일 계획이다. 이번 총선에서 의사들에게 모욕을 주고 칼을 들이댔던 당에 대해 괴멸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한다.
Q. 다른 후보 공약 중 회무에 반영할 만한 게 있나
선거 과정에서 국회의원 출신인 박인숙 후보가 지적한 부분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의협이 의료계에 영향을 주는 법안이 국회에서 제·개정되고 있는지, 어느 단계에 놓여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의료계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법을 어떻게 추진할지 조망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정치 경험이 많은 박인숙 후보에게 맡아달라고 제안하고자 한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박 후보의 귀한 능력을 전체 의사를 위해 베풀어 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
Q. 마지막으로 한마디
국민과 의사들 모두 피해가 없도록 이번 이슈를 잘 풀어갈 생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은 의료계가 아닌 정부와 여당에 넘어갔다. 정치는 국민을 편하게 하는 행위다. 그들이 국민이 불안하지 않게 바른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 바른 정책을 펼쳐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