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절규···'실추된 부친 명예, 반드시 회복'
원주 집단감염 파문 자살, '압박수사·사실왜곡 등이 복합적으로 만든 희생양'
2016.03.17 12:38 댓글쓰기

원주한양정형외과 C형간염 집단감염 원인이 1회용 주사기 재사용 때문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보건당국과 경찰의 섣부른 예단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던 한 의사가 세상을 등진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돈에 혈안이 된 파렴치한’으로 낙인 찍힌 이 의사는 지난 4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주사기 재사용을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일관되게 진술했다. 다만 자가혈주사 시술에 사용하는 국소마취제 오염 가능성은 시인했다.


그러나 다나의원 사태로 홍역을 치른 경찰은 처음부터 주사기 재사용 가능성에 수사의 무게를 실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당국 역시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이 원인일 것으로 판단했다.


주사기를 재사용하지 않았다는 의사의 '절규'는 사실로 밝혀지고 있지만 깊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은 채 선명하다. 이 의사의 아들은 불명예와 함께 삼도천을 건넌 아버지를 위해 용기를 냈다. 

16일 데일리메디와 만난 아들 노모씨(31)는 "아버지가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주사기를 재사용한 비도덕적인 의사는 아니라는 점만은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노씨는 침착한 어조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떨치기 힘든 표적수사 의혹

아버지는 지난 2월 29일 1차 경찰 소환조사부터 주사기 재사용을 부인했다. 약물 혼합 과정에서 순서에 착오가 있었음은 시인했다.

PRP시술이 환자 한명 당 일정 간격을 두고 3회 또는 그 이상 행해지는데 이 과정에서 연쇄적인 리도카인 병 오염이 일어났고, 이것이 집단감염 원인인 것 같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주사기 재사용이 사태의 핵심 원인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했고, 왜곡된 보도가 이어짐에도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형성된 기조에 편승해 수사 방향을 전환하고 기획, 표적수사를 진행하려 한 의혹이 있다. 


담당 형사는 지난 9일 전화통화에서 ‘주사기 및 키트 주문 수량과 PRP 시술양이 일치하기 때문에 재사용이 아니다’라고 확답해 줬다. 하지만 잘못 알려진 사실을 곧바로 정정하지 않았고 11일이 돼서야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무너진 무죄 추정의 원칙

아버지는 간호조무사의 실수로 리도카인 감염이 발생한 것을 알고는 혼자 책임을 지려고 하셨다. 10년 이상 함께 일한 직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런데 경찰은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사건 은폐 행위로 몰아갔다.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전에 입을 맞췄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직원들을 돈을 벌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집단으로 규정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을 바탕으로 선입견 없는 조사를 받을 권리는 박탈 당한 것이다.


1차 조사 이틀 후 담당 형사는 전화로 아버지에게 내원 환자 중 에이즈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하지만 그 환자는 병원에 내원했을 때 HIV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PRP 시술도 받은 적이 없다.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환자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같은 사실 관계를 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았다.


이후 언론을 통해 에이즈 환자가 내원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물론 집단감염과 개연성 없는 환자라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경찰의 압박 수사와,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 탓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 있었다. 경찰의 전화로 아버지는 사실 무근인 에이즈 확산에 대한 공포심에 시달려야 했다.


에이즈 환자 소식에 패닉


소환조사에 앞서 어머니를 비롯한 지인들은 아버지가 심각한 고혈압 환자이고, 우울증까지 있으니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수사와 관련돼 꼭 필요한 질의 사항이 아니면 자제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은 에이즈 환자를 언급하며 아버지를 압박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 날 ‘경찰이 에이즈 환자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 말하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이상했다. 아버지가 성실하게 수사에 임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님 말고’, ‘찔러보기 식’의 무리한 수사를 진행해야 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에이즈 환자 얘기를 듣기 전까지 아버지는 피해자 보상을 고심하셨다. 어떻게든 책임을 지려고 하셨다. '공정하고성실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면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찰보다 더한 보건당국


복지부가 지난 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최근 일부 비윤리적인 의료인이 1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해 C형간염이 집단으로 발생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는 문구가 있었다.

수정 요청에 의해 지금은 ‘C형간염 등’으로 수정됐다. 이미 한양정형외과 사건도 다나의원처럼 주사기 재사용을 했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된 상황에서 ‘등’자 하나 붙인다고 잘못된 사실이 정정될 리 없다.

해당 보도자료 내용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망자(亡者)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 '비도덕적인 파렴치한'이라는 오해 소지가 다분하다. 이 보도자료를 근거로 수 많은 언론들이 잘못된 사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경찰과 복지부 측에 사실 정정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곧 발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경찰이 이번 주 중 복지부, 질병관리본부랑 역학조사,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다고 했다. 일반인들도 주사기 재사용과 국소마취제 감염은 어떻게 다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발표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추된 명예회복


아버지 사망 당일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가택을 수사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문제제기 하고 싶다.

아버지를 발견한 어머니는 119에 신고해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경찰은 어머니에게 전화해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향후 집에 와 보니 거실은 쑥대밭이 돼 있었다.

아버지 유서를 찾느라 그렇게 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경찰의 압박수사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한 내용이나 수사 과정에서 아버지가 겪은 부당한 대우에 대한 언급을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추측이다.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경찰의 수색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 복지부 보도자료로 인한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도 소송을 진행할 생각이다.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하다.  
 

사실 왜곡의 희생양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의사의 의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C형 간염 감염과 그 확산을 막지 못해 많은 분들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향후 어떻게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노력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다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실추된 명예를 아들로서 회복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아버지는 경찰의 수사 편의주의와 재사용을 기정사실화 한 복지부, 그리고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한 언론이 만든 희생양이다.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기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조심스럽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하셨을 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잘못된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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