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2월 22일, 대전광역시를 시작으로 2019년 전국 16개 시도의사회 정기대의원총회 막이 올랐다. 대정부 강경파로 알려진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지역의사회 대표들의 정례 모임이다. 이번 총회에서 전국 시도의사회는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적정수가를 기반으로 한 적정진료 환경 조성을 거듭 촉구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어진 수가 정상화에 대해 한 목소리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가뜩이나 낮은 저수가 진료에 무차별한 삭감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개원가의 경영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故 임세원 교수 사망사건으로 불거진 의료인 안전문제도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많은 의사들이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시도의사회는 이 같은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더불어 의료계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한 정책을 하루빨리 시정, 보완해서 의료인들이 보다 충실하게 국민건강 파수꾼으로써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번 총회에서 제기된 의사회장들의 격정적인 연설을 모아봤다.
이번 정기총회 시즌에서 공통적인 화두는 수가 정상화와 의료인 안전 사안이었다.
의협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이용량은 OECD 주요국가 대비 2배가 넘지만 의료비 지출은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나친 저수가를 지적하고 나선 의협은 정부에 진찰료 30% 인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상태다.
이에 의협은 대정부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전국의사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위한 대회원 여론조사까지 마쳤다.
시·도의사회는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가와 함께 의료진의 신체적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는 진료 환경은 문제가 심각하다며 강한 목소리를 냈다.
대전시의사회의 김영일 회장은 “의사가 칼에 맞아 죽는 진료실, 원가도 되지 않는 포퓰리즘 저수가 속에 인건비와 물가는 상승하는 상황으로 병·의원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 고 비판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은 저수가때문”
부산광역시의사회도 적정수가를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 으로 꼽았다. 의사회에 제출된 상정안 중 진료수가 현실화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았다. 부산광역시의사회 산하 15개 구의사회 가운데 6곳이 토의안건으로 제출했다.
강대식 부산시의사회장은 “응급·진료실 안전 문제, 의사 과로사와 병원 보조인력 문제, 이대 목동병원 영아 사망 사건, 분당 횡격막탈장 소아사망 의사 구속 사태 등 모두가 왜곡된 저수가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백진현 전라북도의사회장은 건보공단 일산병원의 재정 상태를 예로 들며 수가 정상화를 촉구했다. 백 회장은 “건강보험 모델 병원인 일산병원조차 전년도 사업 수익이 약 2301억원, 사업 비용이 약 2355억원으로 54억원 적자였다”며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려면 의료수가 정상화 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상북도의사회에서는 의료인 안전을 위한 법적 안전장치가 강력히 요구됐다.
장유석 의사회장은 “‘환자가 오죽했으면 의사를 폭행 했겠냐’ 라는 비정상적 동정론은 더 이상 용납돼선 안된다”며 “지난 연말 임세원 교수 피습사망 사건은 심각한 의권 침해 및 환자 건강권 침해로 근절돼야 하며, 의료기관 폭력을 단순 폭력이 아닌 업무방해죄 적용 등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강력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태섭 울산광역시의사회장 역시 응급실과 진료실에서의 의료인 폭행이 없는 안전한 진료환경 보장과 의료사 특례법 제정을 요구했다.
변 회장은 “회원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의 진료를 안전한 환경에서 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한의사협회 주도 투쟁 찬성 vs 신중 입장 나뉘어
각 시도의사회는 수가 정상화와 안전보장에 대해선 공통적인 입장이었지만 대정부 투쟁을 놓고서는 일부 의견이 갈리는 모습도 나타났다.
일부 시도의사회는 의협의 의권개혁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 반면, 일각에서는 강경한 투쟁 방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강석태 강원도의사회장은 “수가 정상화는 타협의 문제가 아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한국 의료의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생각과 방법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수가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최대집 회장과 같은 생각을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경상북도의사회 장유석 회장 역시 “의료기관의 어려운 경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의협은 진찰료 30% 인상 등을 복지부에 제시했으나 불가함을 전해 왔다”며 “이제 우리는 강력한 대정부 투쟁으로 생존을 영위할 것이냐를 선택할 기로에 서 있다”며 투쟁 의지를 피력했다.
대구시의사회도 의협의 대정부 투쟁에 가세했다. 이성구 대구 광역시의사회장은 “안으로는 지역의사회 본연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밖으로는 대한의사협회에 적극 협조, 투쟁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김병석 대의원회의장도 “의협 집행부가 새롭게 의료개혁쟁취 투쟁위원회를 구성한 만큼 범의료계 뜻을 모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면서 “어느 상대에도 맞붙을 수 있는 투쟁을 잘 하는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기대감을 전했다.
그는 “최대집 회장 집행부가 구성된 1년 여 동안 여러 방향으로 대정부 투쟁을 하고 있지만 회원들이 느끼는 정서는 아직 부족하고 더 확실한 방법으로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며 보다 강경한 대정부 대응을 주장했다.
반면 정부와의 대응 방침에서 투쟁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도 나왔다.
박상문 충청남도의사회장은 “투쟁도 협상도 좋지만 패러다임은 바꿔야 한다. 현재 의협은 정부에게 이득을 취하기 보다는 회원에게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고 있다”며 투쟁 일변도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이어 “덜 뺏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닌, 왜곡된 진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며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탓하지만 그에 앞서 의협이 협상 역량을 갖췄는지 뼈저리게 반성하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집행부는 어떤 투쟁이 좋을지 냉철한 성찰을 해야 한다. 정부와 다툴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임하는 것이 진정으로 회원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논리에 맞설 전문가적 논리는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투쟁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면서 “좀 더 벌기 위해서 또는 가진 것을 덜 뺏기기 위해 싸우지 말고 왜곡된 진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안치석 충청북도의사회장 역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사태에서 보듯 환자로부터 외면 받으면 우리 투쟁은 결토 환영 받지 못한다”며 “환자를 보호하고, 우리가 고통 받는 투쟁이 효과적” 이라고 언급했다.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도 현 의협 투쟁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의협은 최근 의쟁투를 발족하고 투쟁에 나서려고 하고 있다. 이번 투쟁은 정부가 백기를 들고 우리가 요구하는 현안을 해결해야 끝난다. 장기간의 투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회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장기투쟁이 될수록 회원들이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의협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투쟁에는 어떠한 정치적 편항도 없어야 한다. 오직 회원 권익을 위한다는 원칙 아래 실현 가능한 협상목표를 정하고 투쟁에 임해야 한다”며 “대정부 투쟁이 회원들의 울분을 달래기 위한 내부 투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저수가와 안전한 진료환경을 요구하는 의제외에도 현재 보건 의료계의 다양한 문제점을 꼬집는 의견도 제기됐다.
경상남도의사회는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정부의 보건정책에 개원가가 고사 직전에 놓였다며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비판 근거를 제시했다.
최성근 경상남도의사회장은 ▲특진비 폐지 ▲상급종합 병원 2~3인실 급여화 ▲초음파·MRI 급여화 등 문재인 케어와 관련한 항목을 일일이 열거하며 정부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건강보험재정은 1778억 적자를 봤고,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올해부터는 적자폭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적립된 금액 20조원을 모두 사용하면 보험료를 올리거나 무차별 삭감에 이뤄질 텐데 정부가 취할 태도는 뻔하다. 여론을 의식해서 당연히 의사들을 더 쥐어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문재인 케어가 상급종합병원만 배부르게 하고, 1·2차 의료기관 경영난을 가속화하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 쏠림현상으로 인해 불법 PA(진료보조인력) 문제가 불거지고, 대한병원협회 회장이 의료계 현실을 무시한 채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문케어를 발표한지 1년 반 지났고, 의료계가 두 차례 대규모 집회를 통해 반대의사를 나타냈으나 정부는 막무가내 방침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양 회장은 이어 “지난해 상복부 초음파를 시작으로 상급종병 특진료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화 등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한방 급여 확대 및 추나요법 급여화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광열 광주광역시 대의원총회 의장은 “한방 추나요법이 4월 8일부터 급여화 되는데 건강보험 재정에서 1091억원이 나가고, 한약첩약 급여화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세계 유일무이한 보험재정 낭비사업으로, 건강보험에서 한방을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7월 시행되는 의료기관 내 공기질 기준 강화에 관련 해선 “미세먼지 문제마저 의료기관에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며 “정부 지원도 수반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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