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 인공임신중절(낙태)을 금지한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1일 임부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형법 269조 1항과 의사 등의 임신중절 수술을 금지한 270조 1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2년 8월에도 있었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4인이 합헌, 4인이 위헌 의견을 내 낙태죄에 대해 최종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은 헌법재판관 9인 중 6인이 위헌 의견을 피력해야 가능하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모체와 별개 생명체로 생명권의 주체이며, 신체질환 등 불가피한 경우 24주 내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어 임부의 자기결정권 침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의사의 낙태죄에 대해서도 헌재는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길이 열려 있어 과도한 형벌을 규정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017년 또 다른 헌법소원···2년 2개월 만의 결정
낙태죄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2017년에는 또 다른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청구인은 낙태죄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2018년 5월 첫 변론이 열렸다.
이후 9월과 10월 헌법재판관이 바뀌면서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신임 헙법재판관인 이은애·이영진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를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여기에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여성단체들 시위와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수술 중단으로 사회적인 여론도 이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여기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낙태죄가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국가기관에서 보는 낙태죄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인권위는 “형법이 예외 사유를 두지 않고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상 낙태 허용 사유도 매우 제한적”이라며 “이 때문에 낙태 시 불법수술을 감수하거나 안전성 보장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낙태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 낙태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랜 기간 여성을 옥죄어 온 낙태죄 조항이 폐지돼 여성이 기본권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도록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위헌 결정이 나온 지 7년, 2017년 다시 낙태죄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2년 2개월 만에 낙태죄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낙태죄 당사자인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낙태수술 거부는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안 발표에 따른 것이다.
당시 고시에는 ▲진료 중 성범죄를 범한 경우 자격정지 12개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해 마약 또는 향정신의약품을 투약 또는 제공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 ▲약사법에 따른 허가나 신고를 받지 않은 의약품을 사용 또는 변질·오염·손상됐거나 유효기간 또는 사용기한이 지난 의약품을 사용한 경우 자격정지 3개월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 ▲그 밖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산부인과 의사들은 헌법에서 위헌 여부를 심사 중인 낙태죄에 대해 자격정지 1개월의 처분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며 지난해 8월 낙태수술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산부인과가 반발하자 복지부도 한 발 물러섰다. 헌재의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의사들에 대한 처분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낙태수술 중단을 이어가고 있는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번에야 말로 낙태죄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직선제 산의회 김동석 회장은 “헌재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복지부와도 최근에 간담회를 가졌는데 태도가 이전과는 바뀌었다. 위헌이나 헌법불합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의견 청취를 한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다면 법안 개정이 되기 전까지 낙태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관련된 입법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시라도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 낙태수술을 더 이상 할 수는 없다는 입장도 보였다.
김 회장은 “합헌 결정이 나왔는데 낙태 수술을 계속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에 의거하지 않는 행위이고 자격정지 1개월인데 누가 하겠나”라며 “다만, 선진국에서도 낙태죄 개정이 이뤄지는 추세이니 헌재도 따라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바라는 낙태죄 폐지가 낙태 허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회장은 “의사들은 낙태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법을 제대로 제정하면 지키겠다는 것”이라며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