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했던가. 의료계 역시 비도적적이고 비윤리적인 일탈로 의사 전체를 욕보이는 ‘의꾸라지’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수술실 마취된 환자 앞에서 생일파티를 한 의사, 해부용 시신을 노출한 상태에서 인증샷 찍은 의사. 의료기기 영업사원에 대리수술을 맡긴 의사. 이들의 행태로 결국 전국 병원 수술실에 CCTV 설치가 의무화 됐다. 특히 최근에는 일부 의사들의 마약 ‘셀프처방’이 사회적 도마 위에 오르면서 관련법 강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동료의사들을 사지로 내모는 소위 ‘의꾸라지’ 그 만상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윤리의식 상실 의사들이 초래한 ‘CCTV 족쇄’
2016년 9월 서울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25세의 젊은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자칫 단순 의료과실로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당시 수술실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술을 집도한 성형외과 원장의 이른바 ‘공장식 유령수술’이 문제였다. 옆 수술방을 오가며 수술하는 원장의 모습과 방치된 채 누워있는 환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사고 이후 환자가 누워있는 수술대 밑의 흥건한 피와 그 피를 아무렇지 않게 밀대로 미는 모습, 간호조무사들이 화장하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습 등이 확인됐다.
여론은 들끓었다. 의료사고 입증 책임 명확화, 대리수술 등 불법행위 감시, 안전하게 수술 받을 환자의 권리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졌다.
국회도 이에 편승해 의료기관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고, 결국 지난 9월 25일 전격 시행에 이르렀다.
일명 ‘권대희법’으로 불리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비단 이 사건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오랜기간 누적돼 온 수술실 내 의료인들의 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공분이 폭발한 결과다.
실제 수술실에서 마취 상태의 환자를 두고 생일파티를 한 의료진, 해부용 시신을 노출한 상태에서 인증샷을 찍은 의사 등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특히 영업사원 등 비의료인에게 수술을 맡기는 대리수술과 유령수술 사례들이 언론지상에 심삼찮게 등장하면서 수술실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의료윤리를 저버린 소수 의사들의 일탈은 ‘수술실 CCTV 의무화’라는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전신마취 수술을 시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하고 위반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로 감시를 받으면서 수술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젊은의사들이 수술을 기피하고 이는 필수의료 인력난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너무나 가혹한 ‘의사면허취소법’
의사면허취소법 역시 의꾸라지들이 동료의사들을 사지로 내몬 경우다.
지난 11월 20일 시행된 의사면허취소법에 따라 의료인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범죄의 구분 없이 면허가 취소된다.
범죄를 저질러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은 처벌을 받은 후 면허 재발급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40시간의 의료윤리 교육 등을 이수해야 면허를 다시 받을 자격이 생긴다.
의료인의 면허취소 대상 범위가 기존 ‘의료법 위반’에서 ‘의료사고를 제외한 모든 범죄’로 확대됨에 따라 교통사고를 내고도 면허가 취소되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의사면허취소법의 시발점은 지난 2019년 발생한 ‘오인 낙태’ 사건이었다.
서울 강서구 한 산부인과에서 수술 전 환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엉뚱한 산모에게 낙태수술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은 베트남 여성은 임신 진단 후 영양제 주사를 처방받았다. 이 여성은 주사를 맞고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낙태수술을 당한 뒤였다.
경찰 조사결과 다른 환자로 착각한 간호사와 의사가 이름 확인도 하지 않고 마취부터 낙태수술까지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해당 의사가 다른 병원에서 진료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논란이 일었고, 이것이 의사면허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가수 고(故) 신해철의 장 협착 수술을 집도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 역시 의사면허취소법의 계기로 작용했다.
해당 의사는 이후로도 병원 이름을 바꿔가며 진료를 하다가 다른 환자를 또 사망에 이르게 한 뒤에 지방 종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의사면허도 취소됐지만 3년 후 면허를 재발급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이번에도 여론에 편승한 국회가 의료인 면허 결격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고,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023년 11월 20일부터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마약 도매상’ 비화된 의료기관
지난 8월 서울 압구정에서 발생한 소위 ‘롤스로이스’ 사건의 불똥은 예기치 않게 의료계로 튀었다. 가해자가 성형외과를 돌며 마약류 의약품을 투약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망이 확대됐다.
가해자의 마약류 처방에 연루돼 압수수색을 받은 병·의원이 10곳을 넘어섰고, 급기야 ‘마약 도매상’으로 비화되며 의료계 전반에 걸친 수사와 조사가 예고됐다.
의학적 판단이라는 명분 하에 새로운 마약의 온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에 정치권은 의료기관들의 마약 처방 실태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의료기관 내 마약류 처방 실태는 처방권을 가진 의사가 스스로 처방하는 ‘셀프처방’과 의료기관 차원의 점검 시스템 보유 여부로 번지고 있다.
의사들이 허위로 수술한 것처럼 꾸민 뒤 프로포폴을 대량으로 빼돌려 유통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등 일부 의사가 마약 불법유통 주체가 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회에서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매년 전체 의사 중 11%인 8000여 명(치과의사 포함)이 마약류 의약품을 셀프처방했다.
2020년 이후 올해 5월까지 의료용 마약류 셀프처방이 확인된 의사는 총 1만5505명이었다. 이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활동 의사인 11만2321명과 치과의사 2만8015명의 11%에 해당한다.
특히 某요양병원 소속 의사는 지난 한 해만 마약성 진통제와 졸피뎀, 항불안제 등 무려 16만정의 마약류를 셀프처방했다. 이는 하루 평균 440정을 매일 먹어야 하는 양이다.
문제는 의료기관 자체적으로 마약류 셀프처방을 단속하는 경우는 적다는 것이다.
국립대병원에서 자체 전산시스템으로 의사들의 마약류 셀프처방을 자체적으로 막는 곳은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 일부에 그쳤다.
최연숙 의원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지만 마약류 셀프처방을 금지한 병원이 있다는 것은 병원 내부적으로도 마약류 셀프처방 위험성과 제재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 마약류 오남용은 본인 문제 뿐 아니라 환자 진료권 침해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다. 의료용 마약류 셀프처방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검찰청은 앞으로 의료인이 의료 목적 외 마약류 사용으로 중독자를 양산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경우 초범이더라도 구속수사키로 했다.
마약류 셀프 처방 후 의료 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유통한 경우도 동일하게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