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임상현장과 따로 노는 정책”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재정절감이라는 틀에서만 접근하다 보니 정신건강 약제 급여 정책에 일부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특히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의 경우 정작 타과 의사보다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주객전도 현상이 일고 있다며 정신과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정신약물학회에 모인 의사들은 건강보험 재정 절감 차원의 정책 방향에 극한의 피로감을 드러냈다.
중앙의대 민경준 교수는 “재정 부족 때문에 약물 급여 관련 계획들을 실천한다면 계획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다른 방안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이런 장기 계획 마련을 위해 정부에서는 약가제도 개선 협의체까지 구성했으나 실상 의료계는 초반 이후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정신건강 약제 급여에 대한 문제가 계속해서 도마 위에 놓이고 있어 임상 현장과의 소통, 대화 부족이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원광의대 이상열 교수는 “정책 결정을 하기 전 새로운 의약품의 진정한 가치를 모를 때가 많다”며 “임상 의사들이 써 가면서 그 가치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런 부분의 조율이나 소통이 환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정신과 약물이 경제 원리 적용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정신건강 치료가 신체 질병과 유사하게 다뤄지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임상적 관점에서 정책을 결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정부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같지만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 일부는 의사-환자 간 신뢰에 치명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세의대 석정호 교수는 “의사 입장에서 삭감이나 환불 통보가 됐을 때 환자와의 신뢰관계가 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입원환자를 면담 치료했는데 환자가 선택진료비 과다 청구 민원을 심평원에 제기했다. 결국 전문의 사인이 없다며 물어내라고 하더라”고 허탈해 했다.
그는 “그 후 외래로 환자가 왔지만 얼굴보고 면담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돈 문제를 떠나 이유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환자와의 신뢰관계도 무참히 깨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의신청 부분을 잘 검토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SSRI 처방, 정신과 영역 공고히
대한정신약물학회는 SSRI 처방권과 관련, 정신과의 영역임을 확고히 했다. 일부 의료법 조항을 차용, 우회적으로 정신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의료법 제1장 제1조에는,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국민의료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상열 교수는 “의료법 제1조를 보면 수준 높은 의료혜택이 나온다. SSRI의 경우 전문가격인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것이 가장 맞다. 타과에서 어떻게 담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제22조에 따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를 갖춰 두고 그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의견을 상세히 기록하고 서명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타과 진료를 본 환자 중에 상당수가 자신이 항우울증제를 처방받고 있는지 잘 모른다”면서 “왜 SSRI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냐. 의료법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희의대 백종우 교수 역시 "SSRI 관련, 보험 가입에 제한을 받는 등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불이익이 여전히 남아있다"면서 "건당 진료비 등으로 인해 타과는 SSRI를 쓰고 정신과 전문의들을 오히려 쓰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더욱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