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전국에 4년차 37명, 3년차 31명, 2년차 27명, 1년차 20명으로 병리과 전공의가 급격히 줄고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자칫 오진(誤診)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유리로 된 환자의 조직 표본 슬라이드를 현미경으로 관찰해서 진단하는 대신 고배율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서 병리학적 진단을 하는 시스템이 '위기'에 내몰린 병리과의 활로를 열어줄 지 주목된다.
서울아산병원(원장 이상도)이 2020년 ‘디지털 병리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도입한다. 수 년 전부터 의료 빅데이터의 기반이 될 디지털 병리를 향한 시도가 현실화될 전망이다.
병원 병리과장 장세진 교수[사진]는 19일 데일리메디와 인터뷰를 통해 "세계적으로 병리 전문의 수는 부족하며 우리나라는 더욱 적다"면서 디지털 병리시스템 도입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사실 일반 병리 전문의에게는 희귀질환 등 병리학적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 지금까지는 최고 수준의 병리 전문의조차 제한된 정보만 활용해 아날로그적으로 판정했다는 게 장 교수의 시각이다.
"디지털 정보 기반 병리 전문의들 초전문화 가능해지고 환자안전 더 제고"
장 교수는 "디지털 병리가 보편화되면 병리 전문의 간 진단 의뢰, 특히 국제 진단 의뢰도 실시간으로 가능해져 병리 전문가의 초전문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디지털 병리의 핵심은 유리 슬라이드에 담긴 조직의 전체 형상을 고해상도 영상으로 변환하는 기술과 대용량 병리 이미지 파일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기술에 있다.
궁극적으로는 환자 안전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병원은 슬라이드 스캐너, 고해상도 모니터, 저장 공간 등 하드웨어적 측면과 새로운 작업 프로세스, 분석용 프로그램, 새로운 방식의 연구 디자인 등을 선보인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도입도 동시에 이뤄진다.
"병리 데이터 완전 새로운 접근 시도, 신속·정확 뿐 아니라 미지의 정보도 추출 가능"
장 교수는 "현재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 현장에 도입을 계획하고 있지만 전면 도입에 도전하는 의료기관은 서울아산병원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디지털 병리는 병리 데이터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라며 "대량의 병리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인간 눈으로 볼 수 없는 정보도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종류의 의료 빅데이터와도 융합돼 새로운 지식 창출을 위한 진단과 연구 문(門)을 활짝 열어 줄 것이란 기대도 녹아 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이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자동화된 영상분석을 위한 다양한 컴퓨터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세포나 핵, 세포막 과 같은 세포학적 특징뿐만 아니라 조직 구조물 간 공간 관계적 특징도 파악할 수 있다.
한 장의 병리 조직 슬라이드를 디지털 스캔하면 영화 한 편 분량의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 교수는 "한 장의 병리 조직 슬라이드에는 수 억 개의 세포가 존재하고 각각의 세포는 유전자 발현 차이로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디지털 병리시스템 이야말로 진정한 의료 빅데이터의 기반이 될 것"이라며 경제적인 장점도 기대 효과로 꼽았다.
이어 "디지털화된 정보와 인공지능의 결합이 이뤄지면 매우 정밀한 수준의 병리진단 정보를 바탕으로 치료 방법을 선택하거나 예후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