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관리제를 두고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이 또 다시 고민에 휩싸이게 됐다. ‘의료계 주도 한국형 만성질환관리제 제안’ 약속 기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지난 6월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협 주도로 만성질환관리제 모형을 만들어 9월 회의에 제안하겠다고 약속했다. 복지부 및 가입자 측에서도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곧 노환규 회장은 반대 여론에 직면했다. 극심한 반대에 따라 급기야 의료계 혼란이 초래된다는 등 문제를 인식, 회원들에게 사과한 후 회원 동의가 있을 때까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에도 주요 산하 단체에 공문을 보내 찬반 입장을 물은 결과 5개 단체가 반대, 1개 단체만 찬성 입장을 보였다. 개원의협의회, 의원협회, 가정의학과, 일반과의사회 등의 반대로 사실상 의협의 한국형 만성질환관리제는 추진 동력을 잃게 됐다.
노 회장은 의사 회원의 여론을 수용 만성질환관리제를 포기, 우선 반발은 잠재웠지만 건정심에서의 약속이 문제로 부상했다. 정부 및 가입자 측을 설득할 카드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부 및 가입자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감지된다. 무엇보다 37대 집행부 초기 대립과 갈등을 봉합, 어렵게 구축한 신뢰가 손상되지 않을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만성질환관리제가 토요가산제의 부대조건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합의된 사안이니 만큼 건정심에서의 신의(信義)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복지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반면, 가입자 측은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의협을 압박하고 있다. 토요가산과 별개 사안으로 의협이 의결사항을 어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약속을 깬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요가산제에 이은 현안으로 ‘현행 1만5000원인 노인 외래 본인부담금 정액제 구간 상한액 인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의협으로서는 쌓아온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의협의 한 관계자는 "회원 권익 보호 등을 위해 의협이 존재하는 것은 변할 수 없으므로 고민은 되지만 결국 회원의 뜻에 따라 만성질환관리제를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만성질환관리제 추진이 의사가 아닌 보건소나 건보공단에 의해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료계로서도 이에 대한 반대 명분은 없는 실정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공단 주도 만성질환관리제는 의사들에 대한 독소조항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의료계는 책임 소재 문제로 또다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