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대학교는 선거 이전부터 의과대학 설립을 위해 구체적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 1996년부터 의대 설립 타당성 연구를 시작으로 이미 기초 의·화학부(2008), 약학대학(2010), 간호학과(2010) 등을 설립, 의과대학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놨다.
호남에서 사즉생 각오로 벌써 4번째 선거에 나선 이 의원이 이를 놓칠리 없다. 그는 ‘순천대 의대 신설’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어 최대 격전지에서 승부수를 띄웠고, 결국 승리했다.
호남 지역에서 빨간 깃발을 꽂은 그는 국회의원 당선 후 의과대학 신설을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당선된지 채 한달도 안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순천대학교를 방문, 간담회를 갖고 의대 유치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서 송영무 순천대학교 총장은 “순천은 120만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산업단지가 많아 산업재해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어 의학대학 유치가 시급하다”며 의대 신설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인구가 200만명, 300만명 되는 다른 지역도 의대가 없어 의과대학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인구수와 산업단지가 많다는 이유로 순천대학교에만 의대를 설립해야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의원의 행보가 불편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다. 박지원 의원 지역구에 위치한 목포대학교 역시 의대 설립을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있었다. 목포대의 의대 유치는 2008년에 의대추진위원회 구성으로 복격화됐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임태희·정의화 의원과 새정치연합(당시 민주당) 이윤석·박지원 의원·정종득 전 목포시장, 임병선 전 목포대 총장 등 150여 명의 국회의원 및 각급 기관장을 대표로 의대설립추진위를 발족했다.
추진위는 최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전남도 투자 유치 서울사무소’에서 ‘목포대 의대 유치추진위원회 서울사무소’ 현판식을 하고 본격적인 의대 유치 활동에 들어갔다.
서울사무소는 전남의 취약한 의료 환경을 알리고 그에 따른 의대 유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두 거물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정현 위원은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지원 의원의 지역구인 완도, 진도 역시 의료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전남에 2개 의대를 한꺼번에 유치할 수 없다면 공단이 많아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순천)에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30년 이상 화학 공업단지, 제철 공업단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의학차원에서 연구도 필요하다”며 순천의 의대유치 근거를 내세웠다.
같은 날 박지원 의원 역시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정현 위원과의 의대유치 경쟁설과 관련해 “이정현 의원과 싸울 군번이 아니다”라며 맞불을 놨다.
박 의원은 “전남에 의과대학이 없기 때문에 순천이든 목포든 생기면 좋지만 목포는 신안군, 진도군, 완도군 등 섬이 많아 사람들이 목포로 나와 광주대학병원으로 이송되는 불상사가 많다”며 “목포는 25년 전부터 의과대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순천대는 오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두 중진의원의 이같은 대립은 의대 설립을 희망하는 많은 지역 중 순천과 목포를 유력한 후보지로 부각시켰다. 역사적으로 의대 설립은 정치 권력과 무관할 수 없는데, 두 실세의 발언이 뒷심을 발휘한 것이다.
서남의대 퇴출 움직임도 이런 흐름에 한몫했다. 과거 선거 때마다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의대 신설 움직임이 재편돼 왔는데, 올해는 서남의대 정원의 향배에 물음표가 찍히며 의대 신설에 대한 기대심리를 더욱 증폭시킨 것이다.
더욱이 그간 의대 설립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정원 확충이 어렵다는 지적에 다른 의대의 정원을 재분배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의대 설립 실현 가능성은
두 의원 간 불꽃이 튀고 있지만 정작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아 찻잔 속 태풍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선 의료계가 의대 신설을 원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전남도의사회 역시 반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의대 신설을 담당하는 주무부처도 줄곳 “계획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오고 있다.
전남도의사회는 “의사과잉 공급문제로 인해 의대 정원을 10% 감축한 상황이다. 의대가 신설되면 의사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현재 전남의사회 의견은 의대 신설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분명히 했다.
실제 현재 의대가 전국적으로 41개에 달하고 의사인력 과잉 공급으로 정부는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의대 입학정원을 10% 감축, 2008년도 의대 신입생부터 동결된 상태를 유지했다. 2009년 이후에도 5년 동안 3058명으로 동일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대정원 10% 감축 합의가 이행된 점을 감안하면 1998년 이후 16년째 변화가 없었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올해 연말에도 교육부에 지난해와 동일한 3058명을 의료인에 대한 입학정원으로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추가 의대 설립 의견이 부상할 때 마다 “서남의대, 관동의대 등 부실의대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부실 의학교육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피력해 왔다.
특히 의협은 “향후 의사인력 공급 과잉이 예상되는 현실에서 의대 신설, 의사인력 증가를 보다는 지역보건의료 수요를 파악해 현재 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혜안이다”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의대 신설의 열쇠를 쥐고 있는 복지부와 교육부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교법인 설립을 검토해봐야 하겠지만 대학 설립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 현재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의대 정원은 복지부가 매년 하반기 의료인에 대한 입학정원을 교육부에 통보하면 이를 토대로 결정되는데, 현재까지 복지부는 의대 정원 조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의료자원과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의과대학 입학정원에 변화를 줄 계획이 전혀 없다”며 “의사수급에 관련된 문제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중장기 의료인력 수급 관련 연구용역 결과가 조만간 나올 예정인 만큼 최종 보고서를 토대로 한 재편 가능성은 열어놨다.
교육부는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원 배분 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서남의대 폐과 문제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정원 배분은 최종 판결 이후에나 논의할 사안”이라며 신중하게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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