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분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사상 최초로 회장 불신임이 이뤄지며 혼란에 빠진데 이어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지면서 내홍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특히 현 집행부를 제외하고 상당수 의사들이 이번 원격의료 시범사업 실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시범사업 자체가 원활히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醫 "원격의료 저지 위한 전략"
30일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6월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행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의료계의 반발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의협 집행부가 기자회견과 대회원서신문을 통해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비난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원천무효 주장이 잇따르는가 하면 '밀실' 합의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우선, 의협은 대회원 서신문에서 "원격진료 원천반대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다. 졸속으로 추진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환자 안전성과 유효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시범사업은 원격진료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며 "시범사업 동참은 원격진료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저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기회에 문제점들을 확실히 밝혀내 현 정권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에서도 더 이상 원격의료를 추진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다.
집행부는 의료계 내 반발을 의식한 듯 "회원들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반영하겠다"면서도 "시범사업에 불참하면 의료제도, 건강보험 등 39개 합의사항이 무효화 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언급했다.
비대위 이어 의료계 다른 단체들도 비난 가세
그러나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의료계 곳곳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해 타 단체들도 잇따라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원격진료를 반대한다는 집행부가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막을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며 "시범사업에 서둘러 합의를 해주는 속내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의협 집행부와 복지부가 '야합'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 실시에 기습적으로 합의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모든 의사들의 우려에도 비밀스럽게 합의한 이유가 궁금하다"며 "몇 년 간 시범사업을 해도 장담할 수 없는 원격의료를 6개월 내로 마무리하고 시행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의사회는 "계속해서 무리한 시범사업 추진을 강행한다면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이겠다"며 "이후 발생할 불미스러운 일의 책임은 노환규 전 회장과 현 직무대행 집행부에 있다"고 책임론을 환기시켰다.
시범사업 실효성 '촉각'
당장 시범사업 설계에 들어가야 하는 의협이지만 참여해야할 의사들이 이 처럼 반발하면서 과연 시범사업 자체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효성·안전성을 검증하기엔 6개월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고, 이는 왜곡된 결과 도출로 이어져 '원격의료 저지 근거 마련'이라는 애초 목적과 달리 오히려 정부 측에 도입의 명분을 제공하게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개원내과의사회·가정의학과의사회 등이 원격의료 시범사업 불참을 공식 선언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작 시범사업에 참여해야 하는 의사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집행부로서도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집행부 역시 회원들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러서는 시범사업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날 최재욱 부회장도 기자회견에서 비대위가 추진하는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 원격의료 반대 의견이 우세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궁극적으로는 회원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앞서 비대위는 6월 첫째주 중 전국 반모임을 개최하고 대회원 설문조사를 거쳐 원격의료에 대한 입장을 확정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 부회장은 "회원들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체 회원들에게 객관적으로 묻고, 시범사업 추진에 반대 의견이 높게 나오면 중지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설문조사에서 부정적 여론이 우세하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문제점을 미리 알리고, 회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