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워 뺏기는 심정' 지방대병원 속앓이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까지 엑서더스…자교 출신 의대생들로 정원 못채워
2012.07.13 11:52 댓글쓰기

뻐꾸기는 대표적인 탁란조(托卵鳥)다. 알을 자기가 품지 않고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집어넣어 새끼치기 하는 새의 종류다. 이 때 탁란을 당하는 새는 뱁새, 개개비, 때까치, 붉은머리오목눈이 등으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채 뻐꾸기 알을 품는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패악적 살생을 저지르고 둥지를 독차지 한 채 숙주새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는다. 종국에는 자신을 길러준 숙주새를 배은(背恩), 둥지를 떠난다.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빌어 키운 자식을 잃은 슬픔을 뻐꾸기 알을 품은 ‘숙주새’에 비유하곤 한다.

 

전공의 블랙홀 빅5 병원 위력
최근 병원계에도 이런 숙주새의 아픔을 호소하는 대학병원들이 늘고 있다. 더욱이 이들 병원은 자식들이 떠날 것을 알면서도 알을 품는 탓에 그 고통은 곱절이다.


환자뿐 아니라 의사들까지 빅5 병원으로 몰리는 현실의 최대 피해자는 단연 다 키운 자식을 빼앗기는 지방 대학병원들이다. 6년에 걸쳐 들인 공은 의사국시 합격자 발표와 함께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인턴, 레지던트의 절대 다수가 자교 출신 의대생들로 채워지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이고, 근래에는 정원 조차 채우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실제 최근 10년 간 전공의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매년 4분의 1이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에서 수련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3년 전체 전공의 지원자 중 62.8%가 수도권 소재 수련병원을 택했고, 2012년에는 그 비율이 67.3%로 증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중 50.4%가 서울 지역이었고, 그 중에서도 52.8%는 빅5 병원으로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전공의 절반이 서울을, 서울 지역 전공의 절반이 빅5를 택한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2003년 전체 전공의 합격자 3098명 중 25.8%인 798명이 빅5 병원에서 수련 받았다. 2004년에는 26.4%(826명), 2005년 25.4%(825명), 2006년 24.7%(823명), 2007년 24.1%(828명), 2008년 25.9%(882명), 2009년 27.0%(960명), 2010년 26.6%(934명), 2011년 27.1%(946명), 2012년 26.6%(930명)이었다.


전국에 160곳의 수련병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전공의 4분의 1 이상이 5개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들에게 빅5 병원의 문턱은 높을 수 밖에 없다. 빅5 병원의 경쟁률은 전체 수련병원과 최대 20%까지 차이를 보였다.

 

지난 2006년 빅5 병원의 전공의 1년차 모집 경쟁률은 154.1%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당시 전체 수련병원 평균 경쟁률은 136.0%였다.


이 후 빅5 병원의 경쟁률은 수치상으로는 약간 하향세를 보였지만 전체 수련병원 경쟁률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실제 빅5 병원 경쟁률은 2007년 147.7%, 2008년 143.8%, 2009년 139.2%, 2010년 144.1%, 2011년 138.6%, 2012년 131.4%로 줄어드는 양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전체 수련병원 평균 경쟁률 역시 2007년 134.9%, 2008년 132.0%, 2009년 128.7%, 2010년 129.2%, 2011년 125.6%, 2012년 120.9%로 감소해 빅5 병원과의 격차는 여전했다.


떠나는 전공의… 속타는 모교병원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 대학병원 대부분이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에 신음하고 있다. 대학병원별 자교 출신 전공의 비율은 다수 병원이 공개를 꺼려 지역별 수치를 살펴야 했다.


강원의대, 관동의대, 연세원주의대, 한림의대가 소재한 강원 지역의 경우 한해 최대 27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2012년 이 지역은 110명의 전공의 정원 중 89명 밖에 모집하지 못했다.


경북의대, 계명의대, 대구가톨릭의대, 영남의대가 있는 대구 지역 역시 정원 277명 중 221명 확보에 그쳤다. 이들 대학의 한해 배출 졸업생 302명이란 수치가 무색한 수준이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원광의대와 전북의대, 서남의대가 소재한 전북 지역은 한해 최대 237명의 의대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정원 138명 중 109명 밖에 채용하지 못했다.

 

이처럼 2012년 16개 시도 중 서울과 경기, 광주, 울산을 제외한 나머지 14곳이 전공의 정원 미달 사태를 겪었다. 특히 경북, 대전, 전북, 제주도는 전공의 지원율이 7%대에 그칠 정도로 저조했다. 특히 경북과 충북, 제주 지역은 배정된 전공의 정원이 각각 29명, 61명, 25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마저도 채우지 못했다.

 

또한 16개 시도 중 경북, 전북, 충북, 제주 등 4곳은 지난 7년 동안 단 한번도 전공의 정원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방 대학병원들의 전공의 미달 사태가 앞으로도 장기화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지방 대학병원은 의대생들의 수도권 이탈로 자교 출신은 물론 타교 출신으로도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있는 상황. 때문에 수련의 질 저하와 업무량 과중의 이중고가 심화되고 있다.


반면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질 낮은 수련과 격무를 감내하면서까지 모교에 남고 싶지 않아 재수를 감수하고서라도 빅5 병원을 고집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결국 지방 대학병원들의 수련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전공의들은 이러한 모교 병원 대신 빅5 병원을 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상황이다.


균형 위한 규제 vs 전공의 병원 선택권
지방 대학병원들은 어떻게든 자교 출신 의대생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에서 의대생을 대상으로 전공의 모집 설명회를 진행하고 합격을 보장해 주는 ‘예비선발’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약발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개원의든 봉직의든 ‘빅5’라는 간판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의료계 풍토에서 전공의들에게 ‘모교 병원’을 위해 의리를 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미래의 삶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 필요하고, 지방의 모교 병원은 자신의 수련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공의 수급 불균형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수련병원 구조조정과 전공의 정원 축소도 궁극적으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는 무분별한 수련병원 지정과 수요공급 법칙이 무너진 전공의 정원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해결한다고 빅5 병원으로 향하는 전공의들의 발길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는 “환자들의 빅5 병원 쏠림 현상과 같은 이치로 접근해야 한다”며 “수련기관이 줄고 정원이 줄어도 전공의들의 빅5 러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환자의 병원 선택권 만큼이나 의사의 진로 선택권도 존중돼야 한다”며 “통제기전을 통해 수련기관의 균형을 맞춘다는 발상은 시작부터 틀렸다”고 꼬집었다.


의사인력 수급에 관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전공의 빅5 병원 쏠림에 대해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전공의 수급 불균형 문제 해소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전공의 개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 대학병원들의 고충을 잘 알지만 균형발전을 위한 규제의 위험성을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체적인 수련환경 개선이 수급 불균형 해소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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