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명→512명→1000명+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대한 전망치가 풍선처럼 부풀고 있다. 며칠 전(前) 정부에서 흘러나온 ‘1000명’이란 숫자를 느낄 새도 없이 오는 19일 정부 의대정원 확대 발표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의료계는 격분과 함께 ‘강경투쟁’ 카드를 만지고 있다. ‘무계획’ ‘불통’ ‘뒷통수’ 등 강한 어조 비판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총파업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0월 15일 오후 9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국민의힘, 정부, 대통령실은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협의회는 정부 의대정원 확대 발표를 앞두고 의료계 반발 등에 대한 대처 방안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당장 2025년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현재 의대정원 3058명에서 약 30% 증가 폭이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가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붕괴에 대한 고육지책이라는 입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밝힌 보건복지부 내부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대 졸업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약 7.2명으로 OECD 평균 13.6명의 53% 수준으로 나타났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씩 늘려도 2035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2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여론도 의대정원 확대에 힘을 보탰다.
지난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20~60대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의대정원 확대 규모에 대해 1000명 이상이 24%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 300~500명(16.9%), 500~1000명(15.4%) 순이었다.
독일, 영국, 일본 등 고령화에 맞춰 의대정원을 지속 늘리는 세계적 추세도 한몫했다. 일례로 지난 6월 독일 연방보건부에 따르면 독일은 2022년 기준 1만1752명인 의대 입학정원을 연내 5000명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확대 규모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정합의로 줄였던 의대정원 351명도, 올해 의대정원 확대 논의에서 언급된 512명도 아닌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000명대로 보인다.
특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추석 연휴 직전 윤석열 대통령에게 의대정원 확대안을 보고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이 1000명 이상 방안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醫 "9·4 의정합의 무시한 강압적 추진, 필사즉생 투쟁"
의료계 반발은 극렬하다. 지난 11일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구체적 수치가 언급될 때까지만 해도 ‘경계 태세’였다면 뒤이어 1000명이란 예상치 못한 수치가 거론되자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오는 10월 17일 전국 의사대표자 회의를 긴급 소집,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강경한 대응책이 공식 입장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계는 우선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논의에 대한 합의를 무너뜨렸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의대 신설이나 정원 확대는 9·4 의정합의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9·4 의정합의문은 지난 2020년 작성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관련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료계가 총파업으로 대응하자, 9월 4일 5개 항목으로 구성된 합의문이 마련되며 일단락됐다.
합의문에는 ‘보건복지부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협의한다’며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의협과 복지부는 코로나19가 안정된 올해 1월 의료현안협의체를 재개했으나, 뚜렷한 입장 차에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차 정부 의대정원 확대 발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일방적인 강행은 의정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스스로의 약속을 모조리 저버리고 갑작스레 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확대 규모 근거 부족도 지적된다.
지난 15일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개원의협의회 기자간담회에서 김동석 대개협 회장은 “의대정원을 늘린다면 그 인력을 어떻게 배치해서, 어떻게 사용할지가 먼저 계획이 돼야 하는데 수치만 언론에 자꾸 흘리고 있다”며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필수의료과 지역의료 붕괴는 의료 인력 확대가 아닌 분배와 재배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 제기된다.
대개협 기자간담회에서 장현재 대개협 총무부회장은 “국내 전문의 수는 충분하다. 개원가에 있는 전문의를 오전이나 오후에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는 방식으로 재배치하면 충분히 가용하고도 남는다”고 주장했다.
또 필수의료 기피 현상에는 의료소송 부담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회장은 “오진과 실수도 진료의 일부”라며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으로 면책하고, 민사 소송 시에는 판결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판결 기준을 표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처럼 의료계와 정부 입장차가 분명한 상황에서 오는 19일 예상되는 정부 의대정원 확대 방안 발표는 파국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좌훈정 대한일반과의사회장은 “17일 전국대표자 회의 때 강력한 대책 대응 및 가장 필요하다면 투쟁까지 건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의료계 의견을 무시하고, 강압적인 의대정원을 추진하겠다면 지난 2020년처럼 필사즉생(必死則生) 각오로 싸워야 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