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감 환자 추락 사건에 대한 법원의 거액 배상 판결을 두고, 의료계에서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사건에 과도한 판결"이라며 우려 목소리를 냈다.
최근 법원이 독감(인플루엔자) 치료제를 투여받은 환자가 환각 증세로 추락,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자, 병원 측에 5억7000만원의 배상을 판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12월 당시 17세 환자는 독감으로 응급실을 방문해 타미플루 계열 독감 치료 주사제인 페라미플루 접종 후 같은 날 밤 7층 창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환자는 척추손상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됐으며, 가족들은 “의료진으로부터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의사가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치료비와 기대소득 등 약 5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먼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환자분과 상심이 컸을 환자 보호자 등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면서도 “설명의무 확대해석을 통한 고액배상 판결을 내린 법원 판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의료계는 우선 불명확한 인과관계를 지적했다.
의협은 “학계 보고 등에 따르면 해당 환자의 신경이상 증세가 독감 증상인지, 아니면 독감 치료 주사제 부작용인지도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이 이끄는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모임(이하 미생모)’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지 않은 독감 환자에도 환각이나 이상행동의 부작용이 발생한 다수 사례가 이미 의학 논문에 발표됐다”며 “단순히 약 설명지에 해당 내용이 쓰여 있다는 이유로 거액 배상을 판결한 것은 증거 중심주의 법(法) 원칙을 근본부터 허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의약품 부작용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업무 요구라는 지적도 나왔다.
의협은 “이번 판결이 투여 약제의 설명서에 기재된 주요 부작용을 모두 설명하라는 취지라면, 이는 실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모든 의료행위에 있어 예상되는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그 이면에 존재할 가능성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하며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판결 배상액이 과도하고, 이에 따라 필수의료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생모는 “해당 치료를 하고 일선 병의원이 얻는 이익에 반해 터무니 없는 거액”이라며 “앞으로 의사들은 환자 치료에 또 하나의 큰 걸림돌을 얻게 됐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위험성이 있는 수술 등을 기피하도록 하는 방어진료를 부추겨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필수의료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의료 현실을 무시한 채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는 판결이 반복된다면, 의료진 소신진료 위축과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가속화해서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약물부작용에 의한 환자 피해구제를 위해 국회와 정부가 의료분쟁특례법 제정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