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 압박에 못이겨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했다고 거짓 진술을 했던 봉직의가 재판에서 가까스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고대석 판사는 최근 간호조무사 A씨에게 윤곽주사시술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의사 B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 판사는 “간호조무사 A씨가 지시 없이 단독으로 윤곽주사시술을 했으며, B씨는 이사장 요청에 따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했다”고 봤다.
이어 “이런 사정에 비춰 확인서 등은 그 내용을 믿을 수 없고, 지시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의사 B씨와 간호조무사 A씨는 수도권 소재 모(某)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의원에서 각각 원장과 팀장으로 근무했다. 특히 A씨는 의원 이사장의 딸로 십수년간 이 의원에서 일했다.
그러던 지난 2022년 5월 18일 간호조무사 A씨가 환자 C씨에게 윤곽주사시술을 했으나, 이틀 뒤 C씨는 시술부위가 부어올랐다며 남편과 함께 찾아와 주사 성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제서야 A씨는 원장인 B씨에게 “이틀 전(前) 윤곽주사시술을 했다”고 토로하며 환자 측에 대신 설명을 해줄 것으로 부탁했다.
B씨는 ‘내가 지시한 적 없다’고 할 경우 A씨가 곤란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환자 측에 해당 시술에 대해 설명해줬다.
이에 환자 측은 비의료인의 의료행위에 대해 관할 보건소에 신고했고, 보건소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현장조사 당시 의사 B씨는 진료실에서 근무 중이었으나, 의원 이사장인 D씨 지시로 담당공무원을 보지도 못한 채 사실확인서에 서명을 했다.
또 이사장 D씨는 피의자 신문을 위해 경찰서로 이동하던 의사 B씨에게 “이사장을 딸(A씨)에게 물려주려고 하는데 이번 일로 징계를 받으면 곤란할 수 있으니 다른 간호조무사 E씨에게 당신이 지시한 것으로 해달라”고 종용했다.
의사 B씨는 앞서 사실확인서에 서명했을뿐더러, 이사장 지시를 거절하지 못하고 경찰서에서 “내 지시로 간호조무사 E씨가 시술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의사 B씨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혐의로 약식명령 벌금형을 받고 나서야 사태 심각성을 깨닫고 변호인을 선임해 정식재판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의사 B씨 측 변호인은 B씨가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주력했다.
특히 간호조무사 A씨가 상담 뒤 1~2분만에 시술한 점, 그 사이 A씨가 B씨에게 보고하거나 지시를 받기 위해 시술실을 드나든 사실이 없는 점을 적극 증명했다.
또 의료생협의 특성상 비의료인인 이사장 D씨가 의료기관을 운영함에 따라 봉직의인 B씨는 원장임에도 비급여 진료수익 등을 파악할 수 없어,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의사 B씨 측 주장을 인정하고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지시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B씨를 대리한 하모니 법률사무소 이은빈 변호사는 “사실확인서의 법적 효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 요청에 따라 섣불리 서명해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를 뒤늦게나마 바로 잡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확인서에 서명하고 그대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행정처분으로 연계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