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는 끝내 현실이 됐다. 애절한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배정 발표 이후 의료계에는 탄식만 가득했다.
의대생, 전공의, 전임의, 의대교수들까지 강하게 반발하며 숙고를 요청했지만 울림 없는 메아리로 흩어져 버렸다. 이들은 “정부가 루비콘강을 건넜다”며 비통해 했다.
정부는 지난 20일 ‘2025학년도 의과대학 학생정원 배정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달 전공의들의 이탈이 시작된 이후 꼭 한 달만이었다.
예정대로 2000명이 서울 소재 8개 대학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에 배분됐다. 비수도권이 1639명, 수도권이 361명이었다.
의학계 종주단체인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학회들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성명을 통해 개탄의 심정과 함께 향후 야기될 사태를 경고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의 극단적 조치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올 다리를 불태우는 것”이라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오히려 파괴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아울러 정부의 독단적 결정으로 △진료공백 가속화 △의학교육과 수련체계 붕괴 △공공의료 마비 등 우리 사회가 겪게 될 고통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도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의대생 2000명 증원 배정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교수는 “이번 결정은 의학교육 흑역사의 서막을 열 것”이라며 “의대생과 전공의 등이 교육을 포기토록 하는 정책으로는 아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이어 “이는 앞으로 의학 교육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할 독선적 결정일 뿐이며, 총선을 앞두고 교육 생태계를 교란하는 정치적 카드”라고 울분을 토했다.
정부의 대학별 의대 입학정원 발표로 사실상 ‘증원 규모 백지화 후 협상’이라는 퇴로가 차단된 의료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실제 의대생 동맹휴학과 전공의 집단사직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서 투쟁 역시 들불처럼 번져가는 모양새다.
서울대·연세대 교수 비대위는 25일까지 취합된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했고, 울산의대 교수들은 다른 19개 대학과 함께 25일 이후 대학 일정별로 사직서를 내기로 했다.
성균관의대 교수들도 긴급회의를 열고, 사직서를 취합해 일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 역시 지난 14일 총회에서 “정부가 계속 위압적으로 대응하면 전체 교원 대부분이 동의하는 자발적 사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정부의 정원 발표 직후인 20일 오후에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도 집단 사직서 제출을 결정했다. 시점은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25일로 예고했다.
고려대학교의료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0일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공개하고 집단사직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대위가 의료원 산하 안암, 구로, 안산병원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단체행동에 찬성한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5일까지 집단사직을 결정한 의대는 전체 40곳 중 16곳이었는데, 이후 집단사직 의사를 밝힌 의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의대교수들 대부분이 25일을 사직서 제출 시한으로 지정한 만큼 이날을 계기로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교수들은 사직서가 수리될 때까지는 의료현장에 남겠다고 선언한 만큼 당장 무더기로 병원을 떠나는 일은 없겠지만, 사태가 길어질 경우 의료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