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중] 의사로서의 한 과정으로 여겨졌던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복무 제도가 존폐 기로에 섰다.
현역병보다 2배 긴 복무기간 등 처우 문제로 이들 제도를 기피하는 의대생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동맹휴학에 돌입한 의대생들이 현역병 입대를 준비, 공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 증원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함께 대통령 직속 특별위원회 등을 통해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 단축을 포함한 처우 개선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규 공보의 반토막 이어 또 반토막…"37개월 복무는 징벌적 수준"
보건복지부가 지난 8일 밝힌 올해 신규 공보의는 총 716명으로, 지난해 신규 공보의 1106명에서 35.3%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 결과는 더욱 처참하다. 지난해 신규 공보의 중 의과가 450명이었으나 올해는 그 절반 수준인 255명에 그쳤다.
앞서 신규 공보의 중 의과가 지난 2013년 851명에서 지난해 45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데 이어, 1년 만에 또 반토막 난 셈이다.
이성환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은 그 원인에 대해 "군복무를 앞둔 의사들이 공보의 복무기간을 징벌적 수준으로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신규 공보의 수가 줄어든 것에 더해 중간에 이탈하는 인원들까지 발생하고 있다"며 "올해 신규 공보의(의과) 255명 중에서도 4명은 중앙직무교육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공보의 복무기간은 기초 군사훈련을 포함해 총 37개월로, 현역병의 복무기간인 18개월의 2배 이상이다.
군의관 역시 기초 군사훈련을 포함한 복무기간이 38개월에 달하면서, 임관 인원은 현역병 복무기간 감축이 시작되기 이전인 2002년 1500명 수준에서 최근 600~700명까지 줄었다.
유대현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공보의에 의과뿐 아니라 치과와 한의과도 포함했기 때문에 일정 부분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크게 줄고 있는 추세였다"고 말했다.
긴 복무기간에 의대생 37%만 "군의관‧공보의 복무 희망"
실제 의대생들도 복무기간에 대한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유대현 교수가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한국의학교육협의회 '군의관 및 공보의 제도 개선 TF'가 지난해 10월 의대생 18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7%만이 군의관 또는 공보의 복무를 희망했다.
군의관‧공보의 지원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 중 44%가 긴 복무기간을 들었다.
이에 이성환 회장은 "37개월 복무는 현역병 복무기간과 비교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에 반해 공보의에 대한 처우 개선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이전에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5급 상당의 대우를 해줬다면, 지금은 전역 후 이등병이 되는 게 전부다. 또 예전 같으면 2명의 의사가 배치되던 곳에 이제 1명씩 있다 보니 업무도 가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선 설문에서도 군의관‧공보의 지원 포기 이유로 복무기간에 이어 급여‧생활환경 등 처우(25%), 경력단절(17%), 법적책임부담(6%), 과중한 업무(6%)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이성환 회장은 "이런 문제들을 빨리 시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공보의 제도의 존립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계속 피력했지만 아직 실질적인 공감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
동맹휴학 의대생들 '현역병 입대' 채비
이 같은 상황에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따른 일련의 사태는 상황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
우선 동맹휴학에 돌입한 의대생들이 현역병 입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가 지난 3월 의대생 1만3000여명 중 병역의무자 1만여명을 대상으로 군휴학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016명 중 절반 가까운 2460명이 금년 8월 안에 현역병 입대를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현역병으로 입대한 의대생이 200명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해 10배 이상 많은 셈이다.
최근 의대생들과 모임을 가진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씨는 "의대생들으로부터 현역병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학생들에게는 대학 동기들과 군복무 기간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제는 너도나도 가니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도 함께 공부할 친구들이 있으니 더 많이들 간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나마 군의관‧공보의를 고려하는 학생들마저 1년 휴학 또는 유급할 경우 향후 군의관‧공보의 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의대 6년과 인턴 및 레지던트까지 마친 다음 군의관이나 공보의를 지원하는 게 통상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한 해에 의대 졸업생이 없는 것은 곧 한 해에 군의관‧공보의 지원자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유대현 교수는 "전공의보다 더 강경한 게 의대생"이라며 "지난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때도 의대생들이 끝까지 남았다. 이번에도 의대생들은 안 돌아올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더해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지난 3월 군의관과 공보의 총 413명을 차출하면서 지역에 남아있는 이들의 업무까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에 공보의협의회는 지난 3월 28일 복지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공보의 차출과 관련해 업무량, 법적책임, 차출 방식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얽히고 설킨 복무기간 단축 개정 "대통령 직속 위원회 구성, 신속 해결해야"
이처럼 군의관‧공보의의 상황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당장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다는 점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복무기간 단축만 해도 농어촌특별법, 군인사법, 병역법 등 여러 법안을 함께 개정해야만 한다. 여기에 군의관을 필요로 하는 군의 입장, 또 공보의를 필요로 하는 복지부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단기간 내 법 개정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의관‧공보의 복무기간 단축에 대해 "공감한다"며 "국방부와 실무적인 협의를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아직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이성환 회장은 "연구발주를 통해 공보의 복무기간이 단축돼도 지역의료가 지속 가능하다는 점, 또 현 상황이 시급하다는 점을 정성적으로 제시하면서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 한다"고 밝혔다.
유대현 교수는 "단순히 군의관과 공보의 복무기간뿐만 아니라, 지역 공중보건의료 체계 자체를 재편해야 한다"면서 "공보의에 지역 공중보건의료를 맡기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군의관이 공보의 역할을 겸임한다든가 지역에 원격진료 시스템을 완비하는 등 지역의료에 큰 판을 다시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이를 힘 있고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의료개혁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많은 전문가가 위원회에 들어와 이 문제를 비롯한 복합적인 의료현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