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짜리 밥 먹고 사인'···제약 영업맨 피하는 의사들
경제적이익 지출보고서 의무화 시행 후 거짓 서명까지 나도는 등 경직
2018.04.02 05:33 댓글쓰기

경제적이익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 이후 지출 증빙이 까다로워지자, 제약사와 만남을 피하는 의료진이 늘고 있다.

이처럼 영업환경은 힘들고, 실적 압박은 강해 코너에 몰린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의사에게 식사비 지출 서명을 받지 못해 가짜 서명을 했다는 사연까지 등장해 뒤숭숭한 분위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제약사들은 의료기관이나 의료 관련 학회에서 비용 지출 시 현장에서 의사의 서명을 받아야 하며, 일정 금액이 초과할 경우에는 현장 사진까지 증빙자료로 제출해야 한다.

특히, 1인당 식음료비가 1만원 초과 시 반드시 의사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무척 난감한 상황이다.

국내 A제약사 관계자는 "1만5000원짜리 밥을 먹은 뒤 교수님에게 서명을 요청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아 사과를 여러 번 했다"며 "이미 관계가 잘 형성된 교수님의 경우엔 덜 하지만 민망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제약사에 근무 중인 한 영업담당자는 "과거에 비해 교수들과 밥 한 끼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지출보고서 작성을 위해 서명을 요구한 뒤에는 다시 만나는 횟수가 확실히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국내 B제약사 관계자는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가 부여됐어도 외과나 내분비, 신경과 품목을 담당하는 영업맨들은 여전히 막가파식 영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식당 카드깡으로 현금을 만들어 거래처에 지급하는데, 증빙자료 첨부가 어려워 거짓서명을 했다는 글을 봤다"고 했다.

이어 그는 "카드깡처럼 불법으로 현금화한 내용을 거짓으로 기재하고, 서명까지 위조했다면 약사법 위반과 함께 사문서 위조 등 무거운 범죄 혐의를 받게 된다"며 "이제 그런 방식으로 영업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진도 제약사 영업사원과의 만남을 기록에 남겨야 일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지출보고서 관련 교육을 받은 뒤 제약사 영업사원을 만나는 일이 꺼려진다"며 "만원짜리 밥 한 끼 먹고 서명까지 해야 하는데, 사생활까지 노출된다는 면에서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도 "개인이 일일이 서명을 해야 되니, 학회나 의국에서 총무나 의국장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엔 맨날 제약회사 직원들만 만나러 다닌다고 비춰질 수 있어, 개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업사원이 의사 서명을 위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단기적으론 이익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관계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런 행위는 영업과 무관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지출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학의학회는 지출 증빙 자료에 서명하는 일이 의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교육하고 있다.

의학회 관계자는 "사실 의사들 중에 제약사로부터 이익을 받았다고 작성하는 일을 꺼리는 분들이 많다"며 "하지만 기록을 남김으로써 역설적으로 불필요한 의혹을 피할 수 있으며 법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한 보호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