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봉 향배에 따라 의료계 전체가 휘청되는 상황이 잇따라 연출되는 양상이다. 법원이 의료계 주요 이슈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자리잡으며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의료사고와 관련한 민사소송이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최근 굵직한 의료현안 최종 결정권이 법원에 주어지면서 판결에 따라 의료계가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부쩍 잦아지는 모습이다.
가장 큰 파고를 일으키고 있는 판결은 의료계와 한의계가 10년 이상 신경전을 벌여온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의 불법 여부에 대한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구랍 22일 초음파 기기를 사용,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게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A씨가 '면허 범위 외 진료행위'를 했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 서울중앙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낸 것이다.
1심에서 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 기기를 사용하면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다"며 벌금 80만원을 선고했고, 2심에서는 A씨가 제기한 항소가 기각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재판부는 "한의사도 의사와 동일한 목적과 방법으로 초음파 검사를 한다고 일반인이 오해할 가능성이 크고, 서양의학에 따른 진단·치료를 도외시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한의사가 초음파를 진단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의료법상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는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 판결과 상반되는 결과여서 더욱 파장이 컸다. 당시 헌재는 "초음파 기기 사용을 금지한 의료법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한의사의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이번에 대법원은 "헌재는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를 사용은 면허 외 의료행위'라고 결정했지만 최근 국내 한의대 교육과정에 의료기기 사용 내용이 강화됐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위해(危害)가 발생할 우려에 대한 근거도 충분치 않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게 됐다.
醫↔韓 직역갈등 키운 대법원 판결
환자 사망 진단은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의료행위'라는 대법원 판결도 의료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한 호스피스 의료기관 소속 의사와 간호사 등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사망진단은 의사가 현장에 입회해서 직접 환자를 대면 후 수행해야 하는 의료행위인 만큼 의사의 지도·감독이 있더라도 간호사는 수행할 수 없다는 게 요지다.
재판의 쟁점은 간호사들의 사망진단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정당행위’라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사망진단은 의사가 하는 게 마땅하지만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기관 성격도 따져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반면 2심은 “적법한 절차를 지켜 의사가 환자를 검안하고 검안서를 발급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유죄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2심의 유죄 선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간호사가 의사 입회 없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시했다.
의사 억울함 풀어준 사례도 잇따라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로 오명을 벗게 된 의사들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경우 법정에 섰던 의료진 7명에 대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지난 달 15일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사망,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의료진 7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 2심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이어가며 의료진의 ‘유죄’를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상고기각 판결을 내렸다.
또한 지난 2일에는 환자의 모발이식 과정에서 산업용 접착제를 사용한 의사에 대한 보건복지부 징계가 부당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피부과 의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의사면허 자격정지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피부과 의사 B씨는 지난 2016년 11월 무모증 환자에게 하복부 모발이식 수술을 하면서 이식된 모발 가닥을 서로 붙여 고정할 용도로 '물체 접착용' 스프레이를 사용했다.
스프레이를 피부에 직접 분사하지는 않았지만, 접착 과정에서 일부분이 환자의 피부에 닿았다. 환자는 이로 인한 부작용을 주장하며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했다.
복지부는 의료법상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한다며 징계 처분을 내렸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물체 접착용 스프레이를 써서 환자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이유다.
의사는 복지부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은 복지부, 2심은 의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진 최종심에서 대법원은 다른 병원에서도 동일한 접착제를 사용한 사례가 있고, 환자가 겪은 증상이 접착제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2심 판단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설령 접착제를 의약품으로 보더라도 해당 시술법이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의학교과서 등에 소개되기도 한 만큼 징계 사안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