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수가 등 의료정책과 '데자뷰 현상'
2013.09.01 20:00 댓글쓰기

[수첩]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워온 초음파 건강보험 수가가 관행수가 50% 수준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의료계 분위기는 심상찮다. ‘국민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 하에 의료계만 희생해야 한다는 지적이 들불 번지듯 퍼지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이번 초음파 건강보험 수가 결정으로 인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급종합병원, 개원가, 관련 학회 등은 수가 결정 과정 자체를 비판하며, 왜곡된 진료로 인한 부작용이 더욱 클 것이라는 성토의 목소리를 거세지고 있다.

 

더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 초음파 관련 진료시간을 단축하는 등 검사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심지어 아직 다른 영상검사를 환자에게 권유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개원가에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초음파 수가 결정 과정이 허탈하다!’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원점부터 재논의를 할 것을 촉구했다.

 

대개협은 “정부는 43개 행위 급여목록을 간단과 복잡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만들어버려 임상 현장에서 진료 왜곡을 초래하였다”며 “관행 수가의 50%로 결정해 버리는 가격 책정이라면 수가 연구에 어떤 논의의 필요성이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특히 기존의 부위별 급여화 방식이 아닌 4대 중증질환 급여화에 맞춘 방식을 추진함으로써 수가체계에 큰 혼선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대한심장학회, 대한소아심장학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한국심초음파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는 2차 피해를 우려했다. 이들 학회는 “전문가의 의견을 배재한 채 진행된 복지부의 준비 안 된 행정의 결과”라며 “예를 들어 최선의 진료결과를 위해 중복 검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경우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결정 과정이 마치 ‘데자뷰’ 현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은 ‘복지부의 정책 통보→의료계 반발 및 협상→정부 측 입장에 기초한 정책 시행’으로 압축된다.

 

단적인 예로 포괄수가제를 들 수 있다. 포괄수가제 역시 도입 당시부터 의료계는 예상되는 부작용을 거론하며 찬성보다는 반대 입장으로 가닥을 잡아왔다. 백내장 수술의 경우 2012년 5월 포괄수가제가 적용된 이후 수가가 12% 인하됐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은 어떨까.

 

최근 대한안과의사회는 설문조사를 통해 “포괄수가제 시행 이후 21개의 안과 병 · 의원에서 백내장 수술실을 폐쇄했으며, 의사 70%는 난이도 높은 수술을 기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안과 개원의사 가운데 21%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간호 인력을 줄이거나, 직원의 연봉을 삭감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수가로는 병원 운영이 힘든 상태”라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지적했던 부작용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의료 보장성은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보장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의료의 질(質)’이다.

 

진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의료계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정책이 계속 발표된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과연 어디로 가게 될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정부 당국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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