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안 압박 속 출범 의협 집행부 전략 수정
재야단체 이끌던 노환규 회장, 탈퇴→복귀 등 '강경노선'
2013.04.09 18:57 댓글쓰기

[기획 2]1400여명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838표를 획득, 58.67%의 득표율로 과반 이상을 훌쩍 넘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압승을 거둔 노환규 . 제37대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에 대한 의료계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의사들은 의권 확보와 더불어 불합리한 의료제도 개혁을 요구했으며, 의료계 대통합에 대한 욕구도 높았다. 특히 전국의사총연합 대표로 다소 과격한(?) 행보를 보인 부분과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현안 대처와 투쟁에 그칠 게 아니라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는 등 기대감이 높았다.


노환규 회장 역시 당선 직후 “대한민국 의료를 바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의사들이 외부의 간섭이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의료의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전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장밋빛 전망이 그려지는 듯 했지만 가야할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당장 의료계 내분을 수습하고 단결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기존 의료계 지도자의 코스를 밟아오지 않은 노 당선자에게 거부감을 느껴온 의료계 보수층을 설득하고 끌어안아야 가능한 일이다.


대정부 현안도 만만치 않았다. 노 당선자 스스로 출마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던 만성질환 건강관리제, 일명 ‘선택의원제’ 시행이 코 앞에 다가와 있고, 포괄수가제 전면 확대 등 의료 정책 현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와 협상을 통해 협의 및 조율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노 회장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합의구조라는 기존 프레임을 바꾸고 벗어나겠다. 선택의원제와 포괄수가제도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강경투쟁으로 정부와 대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였다.

 

대정부 전략 투쟁 기조 + 근본적 대책 요구


전의총 대표 시절 의료계 이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했던 노환규 회장의 이미지는 ‘강성’이다. 당시 경만호 집행부와도 대립각을 세우며, 강한 의사 집단을 만들기 위한 개혁에 앞장섰다.

 

예상대로 37대 집행부가 선택한 전략은 ‘투쟁’으로 압축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녹록치 않았던 상황 속에 의사들의 힘을 결집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지난해 10월 17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전국의사가족대회’는 그 결과물이다.


이 자리에서 노환규 회장은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들이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국민과 언론을 설득해야 한다”며 “앞으로 의협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의협 집행부는 건정심의 불합리한 구조에서 기인된 포괄수가제 강제 시행으로 또다시 의사단체의 의견을 묵살한 것에 항의, 건정심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그토록 반대해왔던 4개과 7개 수술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2012년 7월 1일 의원급 의료기관과 준종합병원에 강제 시행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건정심 탈퇴, 투쟁 및 수술 거부 경고에도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0월 29일 의협 집행부는 결국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다. 포괄수가제에 이어 2013년도 수가협상에서까지 정부의 고압적인 자세가 변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긴급 의료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추인에 실패, 투쟁 선언이 흐지부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며칠 후 노환규 회장은 강수를 던졌다.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이를 통해 회원들을 대정부 투쟁에 동참시키고 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단계적으로 투쟁 강도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 회장이 제시한 대정부 투쟁 목표는 ▲수가결정구조 개선 및 수가협상 거부권 명시, 협상 결렬시 합리적 기준안 마련 ▲상시 의정협의체 및 의료제도 선진화를 위한 특별협의체 구성 ▲성분명처방 추진 중단 ▲총액계약제 반대 ▲포괄수가제 개선 등이다. 아울러 ▲전공의 법정 근무시간 제도화 ▲병원신임평가 기관 신설 또는 이관 등도 요구했다.


일선 개원가에서는 “사전협의 되지 않은 내용을 로드맵으로 제시했다”면서 투쟁방법에 있어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취지에 적극 공감했다. 의료대표자 연석회의도 이견이 있었지만 동참키로 결정, 노 회장에 힘을 실어줬다.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투쟁을 위한 첫 방법으로 주 40시간 근무, 토요 휴무를 택했다. 휴무에는 전국 1만 4557개 의원 중 7357개(51%)가 참여했다. 의협 비대위는 “갑작스런 휴진투쟁 결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했으며, 이러한 열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후 의정협의체가 구성되기까지 토요 휴무는 한 차례 더 시행됐다. 참여율도 60%를 넘어섰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의협의 어깨에 의료계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대화·타협’ 협상 능력 의문…경솔한 언행 ‘구설수’


의협은 올 1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 8개월만에 복귀를 선언했다. 협의체 논의 과정에서 복지부의 일차의료 활성화와 자율성이 바탕이 된 진료환경 조성 노력의 ‘진정성’을 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노환규 회장의 행보에 문제가 있다”는 일지적도 제기된 상태다. 의협은 “건정심에 복귀할 명분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에서는 “애초부터 무리하게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가 사실상 백기 투항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가시적 성과를 기대했던 개원가에서는 “이런 식으로 건정심에 복귀할 거면 왜 대정부 투쟁과 총파업을 선언하고 토요 휴무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며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의료계 한 인사는 “노환규 회장의 밀어붙이기식 회무 스타일이 문제”라며 “의료계 현안을 복지부에 전달하고 협의하는 게 정상적인데 이런 걸 투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통 부재를 지적한 원로도 있다. 문태준 명예회장은 “의협회장은 똑똑하다고 혼자 결정해선 안된다”면서 “노 회장은 의협 발전을 위해 회원들과 더 활발하게 교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결혼도 두 번 정도 해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의욕적으로 뭔가 바꾸겠다고 했지만 행정적인 절차나 확인 등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시인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앞서 의협 노환규 회장은 지난해 9월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의료계 정화의 필요성을 언급, 의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비급여 신의료기술인 로봇수술 사망률이 80%에 이른다고 밝혀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노 회장 발언은 국회 국정감사로 확산돼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이 실태조사를 촉구했으며, 복지부는 의협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현황 파악을 약속했다.


복지부는 로봇수술을 시행 중인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전국 30개 병원을 대상으로 수술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실적자료 요구 등 사실상 실태조사에 돌입하기도 했다.

 

소통 활성화 SNS, 오히려 부작용 초래


노환규 회장이 대국민, 대회원 소통을 위해 즐겨하는 SNS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이도 다수다.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페이스북에서 다시 공격을 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또 카바수술에 대해 언급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SNS에서 “심장학회가 반대하고, 흉부외과학회가 반대하는 수술이 지속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혹시 복지부가 노벨상 유망주를 죽이려한다는 음모론을 두려워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발언, 논란을 가져왔다.

 

최근 SNS를 통해 게시한 “서남의대 졸업생들의 의사면허가 취소되면 자신의 의사면허부터 반납하고 의협회장직을 내려 놓겠다”는 발언도 일부에선 문제를 제기했다. 면허 취소 위기에 놓인 졸업생 구하기에 전력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회원 지지로 당선된 회장직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인사는 “사실 만성질환관리제, 포괄수가제, 2013년도 수가협상 등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현안들에서 어느 정도 성과만 있었다면 소통부재라던가, 경솔했던 SNS 발언 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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