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 수술을 받은 뒤 병원에서 머무르며 치료와 관찰은 받는 것은 의사 판단에 따라 '입원치료'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은 백내장 수술 후 입원한 환자에 대해 '통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후 보험 업계에선 백내장 수술에 대한 실손보험급을 지급 받기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해당 판결과는 상반된 이번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백내장 수술을 둔 실손보험금 지급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A보험사가 B안과의원 의사와 환자 등 27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 25명에 대해 원고 청구를 최근 기각했다. 피고 2명의 경우 재판에 참여하지 않아 자백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0년 A보험사가 B안과의원을 보험사기방지특별법위반으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 A보험사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A보험사는 이들 환자와 의사들에 대해 "실질적으로 통원치료에 해당하는 백내장 수술 후 관리를 받고도 입원치료에 대한 보험금을 청구했다"고 주장했다.
환자들이 가입한 보험상품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경우 '입원의료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치료 내용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1일간 입원수술을 받았다는 거짓 진료기록부를 작성했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보험사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험사 상품설명서에는 체류시간 등 입원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았으며, 또한 입원치료 필요성은 전문가인 의사 판단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보험계약서 상품설명서는 입원실 최소 체류시간 등 입원여부 판단의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입원치료 필요성은 수술 및 약물투약 부작용 혹은 부수효과와 관련해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지, 환자가 통원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지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전문가인 의사가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일한 방법의 수술이 시행됐다고 하더라도 수술 경과나 환자 상태 등에 따라 입원치료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 "백내장 수술을 시행할 때 통상적으로 입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해도, 이 사건 백내장 수술 당시 입원치료가 불필요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허위 진료기록서를 꾸며냈다는 주장에 대해선 "관련 형사사건에서 검사는 혐의 없음 처분을 했다"며 "불법행위가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못박았다.
"백내장 수술 후 입원치료는 통원치료"...보험사 승소 서울고법 사건과 뭐가 달랐나
서울고법은 지난 1월 H보험사가 피보험자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 피보험자가 받은 백내장 수술에 대해 그 실질은 입원치료가 아닌 통원치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에서 쟁점은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수시간 입원하는 것이 '입원치료'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이에 서울고법은 ▲환자가 수술 준비부터 종료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됐을 뿐임 ▲백내장 수술이 일반적으로 6시간 이상 의료진의 지속적인 관찰, 관리가 필요하거나 입원이 필요한 수술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음 ▲해당 의원 홈페이지에 '준비부터 수술까지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라고 설명돼 있는 점 ▲다른 병원에서도 백내장 수술에 소요되는 시간을 2시간 30분 내외로 안내하고 있는 점 등을 들며 입원치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동일한 수술을 받았어도 의사 판단에 따라 환자 개인의 입원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본 서울지법과 달리, 서울고법은 백내장 수술 후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치료·관리 수준에 무게를 뒀다.
이 밖에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에도 차이점이 있었다.
보험사가 승소한 서울고법 사건의 경우, 해당 의원에는 입원실이 없었다. 반면 보험사가 패소한 서울지법 사건의 B안과의원은 입원실을 운영 중이었다.
한진 변호사 "입원치료 여부에서 전문가인 주치의 판단을 중요시한 판결"
보험사가 패소한 이번 사건에서 의원과 환자 측 소송대리인을 맡은 한진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입원치료 여부 판단에 있어, 복지부 고시가 정하는 입원의 기준인 '6시간'이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전문가인 주치의의 의학적 판단을 중요시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입원치료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도 부합한다고 부연했다.
현행 복지부 고시는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은 입원에 대해 '환자가 6시간 이상 입원실에 체류하면서 의료진 관찰 및 관리 아래 치료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대법원은 "입원실 체류 시간만을 기준으로 입원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환자의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과 경우, 환자의 행동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 변호사는 이어 "이번 판결은 1심인 만큼, 원고 보험사가 항소할 경우 고등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며 "한편, 앞서 보험사가 승소한 서울고법 사건의 경우 현재 대법원 상고가 진행 중으로 결국 대법원 판단에 따라 최종 결론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