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를 두고 의료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지만, 여론조사 설계가 허술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대한의사협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지난 30일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치 상황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받았다고 1일 밝혔다.
병의협은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3일까지 회원 300여명을 대상으로 선호도 1차 조사를 실시해 10월 4일 발표했다. 응답자 구성은 봉직의 43.8%, 개원의 36.7%, 교수 12%, 전공의 3.5%였다. 당시 병의협은 의협 회장 선거기간 전까지 매월 선호도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협 선관위는 병의협 선호도 조사를 규정 위반으로 판단했다.
병의협에 따르면, 병의협에서 지난 10월 4일 발표한 제42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 출마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가 차기 회장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선거관리규정 제4조(공정의무) 위반이라는 의견 제기가 의협 선관위에 접수됐다.
지난 28일 제4차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병의협이 의협 산하단체에 해당하며, 선거관리규정 제4조(공정의무)에 의해 병의협이 ‘선거 결과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됐다.
의협 선관위는 규정 제18조(중지·경고 등)에 따라 병의협에 의협 선거관리 규정 위반에 대한 경고와 함께 추가 여론조사의 즉각 중단과 병의협 홈페이지에 게재된 관련 게시물을 모두 삭제할 것을 시정명령 했다.
또 추후 재발이 발생하거나 의협 선관위의 시정조치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선거관리규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추가 조치 방안을 강구할 예정으로 병의협의 즉시 조치를 요청했다.
병의협은 이번 시정명령에 대해 “산하단체 소속 회원에게 정책 설문조사를 하는 것까지 막아 선거와 관련한 회원 관심을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했다.
이어 “선거관리 규정 제4조는 선거기간 동안 단체의 임직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등의 행위로 인하여 선거 결과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취지의 규정”이라며 “병의협은 봉직 의사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해야 할 회무의 일환으로 정책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병의협은 “2차 정책설문조사 결과 발표를 일시적으로 보류하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의협 선관위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 공문의 철회를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밝혔다.
유권자 알권리는 보장해야 하나, 응답자 대표성·응답 방식 등 문제있어
의료계 내 입장도 갈렸다. 회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병의협의 조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한 의료계 인사는 “회원들의 알 권리는 중요하다”며 “아직 본 선거에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조사 결과가 과열될 우려도 없어 보이는데, 이번 조치는 부당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의료계 인사도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야 하는 측면에서 조사 자체를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다만 이번 조사는 응답자와 응답자에 대한 정보 공개 방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연령별 분포 등 응답자의 정보도 제시되지 않았고, 선거권자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번 조사의 응답자가 실제 선거권자와 성향이 유사하다고 볼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구글앱을 통해 조사가 진행된 점도 여러 우려를 낳았다.
또 다른 의료계 인사는 “병의협이 매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상황에서 해당 조사의 파급력이 크다고 판단될 경우 각 후보자 캠프에서 조직적으로 조사에 참여할 여지도 있다. 구글앱은 그런 조직적 참여를 걸러내기 어렵다.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조사를 제재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차기 의협 회장 후보로 거론된 한 인사는 “아무런 순기능이 없는 조사”라며 힐난했다. 그는 “후보자 등록도 안됐고, 후보자들 공약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표성이 없는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의협 회원들과 선거권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하며 “선관위 조치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