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이 비싼? '약국 조제료' 허와 실
2010.10.11 14:30 댓글쓰기
[특별기고 下]“동네약국 조제료는 병원 입원환자 조제료보다 비싸다.” 이는 의사(의료기관)에 대한 수가와 약사(약국)에 대한 수가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규식 교수는 2009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건강보험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토론회’에서 “약국관리료·기본조제기술료·복약지도료·조제료·의약품관리료 등 5가지 조제수가를 별도로 보상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의약분업 이후 약제비가 증가한 것은 기술료 부분이 높고, 의약품 가격 인하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약국관리료가 있는데 왜 의약품관리료가 별도로 보상돼야 하는지, 조제료와 조제기본료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조목조목 따졌다.그는 또 “조제료와 의약품관리료를 91일까지 처방일수에 따라 산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피력했다.

양기화 전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의약분업이 권장되고 있는 미국·프랑스·독일 등 의료선진국의 경우 약국진료비에 조제료가 없다”며 “우리나라는 필요 이상으로 약국조제료가 신설돼 건강보험재정 지출을 증가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한병원협회도 약국 조제료가 얼마나 터무니없게 높은지 지적했다. 병협은 2002년 성명서에서 “현재 약국 조제료는 하루 2920원인데 비해 병원의 입원환자 조제료는 10분의 1도 안되는 260원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비합리적인 병원수가를 하루빨리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국조제료를 구성하고 있는 5개의 항목을 보면 약국의 수가를 보전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별도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항목인지에 대해서는 눈속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예로 갑상선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씬지로이드(주성분 : 레보타이록신) 1개월치를 처방했다고 치자. 1개월치 약값은 390원이고, 약사들의 1개월치 조제행위료는 9380원이다. 결국 약값과 조제행위료를 합하면 9770원이 ‘약제비 총액’이 되는데, 약제비 총액에 약국 조제료가 교묘하게 숨겨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조제료와 의약품관리료의 경우 조제일수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데, 장기처방을 할 때에는 약값보다 조제료가 더 많아지기도 한다.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국 조제료 명목으로 연간 2~3조원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음을 정부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의약분업 후 재정 추가비용 중 약국조제료가 60%
약국 조제료가 교묘하게 약제비 총액에 숨어 있는 것과 관련, 의료계는 2008년 약국영수증에 의약품비와는 별도로 약사들의 조제행위료 다섯가지를 모두 표기할 것을 주장, 이것이 반영되도록 했다. 그러나 권고수준에 그쳐 약국에서 영수증에 5가지 항목을 반드시 표기하지 않아도 돼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강흥식 전 분당서울대병원장은 2006년 12월 <매일경제> 기고글에서 약국 조제료와 관련 “약국에 진열된 약 한 통을 꺼내주는데 조제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며 “현재의 약국 조제료는 누가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순을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진료수가는 진료행위의 난이도에 따라 정해진 상대가치에 의해 결정되는데, 외래 환자에 비해 입원환자의 조제료가 동네약국에 비해 종합병원의 조제료가 더 싸다”고 조목조목 따졌다.

한나라당 이원형 의원은 2003년 국정감사에서 의약분업제도 후 실시한 의약분업의 비용평가 결과, 국민추가부담이 총 7조 8837억원 이었는데, 이 중 약국 조제료가 4조 7697억원이나 돼 전체의 60%를 차지했다고 밝혀 세간을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의협은 “약국조제료는 의약분업으로 생긴 수가인데, 건강보험재정 파탄의 근본적인 원인이 약국 조제료인 것으로 판명됐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건강보험재정파탄의 원인이 의사라고 주장하면서 수가인하·실사강화·심사강화 등 의사들 죽이기로 일관해 온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이원형 의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중 56.7%가 의약분업 시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49.6%가 의약품 오남용 방지효과가 없다, 74.6%가 의료기관 이용이 불편해졌다고 응답했고, 73.2%가 의료비 지출이 증가했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의약분업은 불편만 가중시키고 의약품 오·남용도 막지 못하고 의료비 지출만 증가시키는 정책이란 것이 국민의 뜻으로 밝혀진 것이다. 의협은 “의약분업이 의료개혁은 커녕 약사p를 제외한 모든 의료인과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비용만 증가시킨 제도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제료 중 형식적 ‘복약지도료’ 실효성 의문
약국 조제료 중 복약지도료가 형식적인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약사들은 외래방문객에 약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식후 30분후에 복용하라’는 등의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복약지도료의 필요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약사법 2조에는 '약사는 의약품의 명칭, 용법·용량, 효능·효과, 저장방법, 부작용, 상호작용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2007년 대전 YMCA의 조사결과, ‘식후 30분후에 복용하라’는 형식적인 복약지도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나타났다. 즉, 국민이 내는 보험료 중 일부가 약사의 형식적인 복약지도에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와 관련, 이경권 변호사는 2008년 <의료정책포럼>에서 “복약지도료를 받는 약사는 약화사고 시 공동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약사법에서 복약지도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제대로 된 복약지도를 국민들이 받을 권리가 있다”며 “복약지도를 소홀히 한 약사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욱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09년 10월 <내일신문> 기고글에서 "약국 조제료 비중이 높은 이유는 첫째, 조제료 속에 환자가 약국에 처방전을 들고 방문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복약지도료가 포함돼 있고 둘째, 조제료가 처방일수에 따라 차등화돼 있어 1일분 3720원부터 91일분 이상의 경우 1만 3770원을 지불하도록 산정돼 있기 때문(2009년 기준)"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처방일수에 상관없이 정액조제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조제료 절감 및 복약지도 향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신원형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은 2010년 7월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열린 ‘의약분업 10년 교훈’ 포럼에서 “2000년 3896억원이던 조제료가 2009년 2조 6050억원으로 증가했고, 국민의료비 증가분도 연간 3조 2184억원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가 아무런 공식적 인정이나 평가자료 없이 침묵한다는 점은 의약계를 탓하기 전에 국가적 문제”라며 “정부의 객관적인 평가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와 사회포럼 운영위원인 양염승 원장도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만 약을 조제할 수 있게 되면서 즉, 조제료 증가로 약국은 혜택을 받았지만 그만큼 환자들은 불편을, 국민들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조제료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약국이 조제료로 인해 혜택을 많이 본 것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04년 수가계약 당시 실시했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김진현 교수가 건보공단으로부터 연구용역을 받은 결과에 따르면, 환산지수 산출 결과 병원 -3.31%, 약국은 -6.06%의 수가인하 요인이 있었다. 반면, 의원은 2.46%의 수가인상 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의약분업 이후 의원이 수가인상 등으로 최대 이익을 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연구에 의하면 의약분업 이후 실제로 종합병원과 약국이 최대 이익을 본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으로 약국에 대한 조제료 수가는 인하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약국 조제료 수가가 내려가기는 커녕 의료수가만 인하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잘못된 의약분업제도시행과, 약국 조제료의 지나친 산정 등으로 건강보험재정은 파탄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건강보험재정 파탄의 책임을 의료계에 돌리면서 의원의 경영이 어려워지게 됐다.

또 각종 의료왜곡을 낳았으며, 국민들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의약분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통해 잘못 지출된 약국 조제료를 보험재정에 다시 환원시키고, 원가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보전해야 한다.의료계가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정당하게 보상받을 때 긍국적으로 국민들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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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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