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처벌 강화 등 공급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수요 억제를 위해 발맞추는 임상 의사들이 디지털치료제 및 원격의료를 주목하고 있다.
현재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치료보호·치료감호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적절한 치료제와 치료법이 없고, 국가 지원이 적어 병의원들 참여가 저조한 상황에서 제시된 대안 중 하나다.
1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강기윤·서정숙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민석·전혜숙 의원이 주최하고 국립법무병원·대한법정신의학회·한국중독정신의학회 등이 주관한 ‘마약류 중독 치료연구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일선 마약중독 치료 현장 의사들은 “병의원들에 대한 적절한 지원 방안 및 혁신적인 치료 수단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마약환자, 일반환자 관리보다 10배 힘들지만 수가 동일하고 직접 치료법·치료제 없어”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에 따르면 마약 중독자들은 단약 후 87.5%가 1년 내 재발하는데 이 1년 동안 재발을 막으면 그 이후 재발률은 12.5%에 그친다. 이런 측면에서 1년 사이 집중치료를 담당할 병의원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러나 의료기관들이 마약중독 치료를 꺼리는 분위기가 적잖다. 실제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해 지정된 의료기관 21곳 중 최근 5년 간 실적이 전무한 의료기관이 9곳이나 된다.
조성남 병원장은 “일반환자와 마약환자 치료 수가가 똑같지만 마약환자는 10배의 노력이 들고, 마약환자 입원 시 일반환자가 다 퇴원하려 하기도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중독자의 갈망을 줄이거나 기억을 없애기 위한 직접적 치료법, 손상된 뇌 부위 회복을 위한 치료법이 없다”고 실상을 전했다.
이에 주목되는 대안이 최근 정신건강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는 디지털치료제 등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이다. 마약중독자 특성상 언제, 어디서 마약에 대한 갈망이 들 수 있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가 어려운 상황을 획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 양극화·디지털 환경, 위기를 기회로 역이용···신기술 과감히 투자해야”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접근성 인프라를 활용하고 급변하는 디지털환경에서 디지털치료제 등 새 치료법에 과감히 투자해 마약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양극화 및 디지털 환경이 기존 약물 중독 치료 체계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더구나 현재는 의사를 통해 처방되는 약물 남용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다.
천 원장은 “여태 진료를 통해 읽어냈던 ‘우울하다’, ‘슬프다’ 등의 감정을 스마트폰 사용 행태만으로도 알 수 있다”며 “중독자가 힘들 때 앱을 켜 후원자와 연결되고 인지행동 치료 교육을 받고 응급상황에는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기능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원격의료 또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환자가 진료받기 위해 병원에 와서 기다려야 하는데 병원은 마약중독자끼리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부담이기 때문이다.
천 원장은 “언제든 연결해 도울 수 있다는 건 환자 입장에서는 획기적이지만 잘 쓰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이 판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 마약중독을 막아낼 수 있는 정책과 콘트롤타워를 세워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약 없이 살 수 있도록 삶 변화···갈망 감소·스트레스 대처능력 강화 수단 필요”
이승엽 은평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단약, 재발방지도 중요하지만 약 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잘 지낼 수 있도록 삶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인지 능력을 향상하고 힘든 상황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경세포에 직접 작용해 마약에 대한 갈망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 대처 능력은 향상시키는 ‘뉴로모듈레이션’과 디지털치료제 등을 가용 가능한 수단 중 하나로 봤다.
이 교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이 개발한 마약중독치료 어플이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재활 상담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의료진이 상시 붙어있을 수 없으니 마약을 포함해 힘든 상황을 대처하고 행복도를 높이도록 초점을 맞춰 디지털치료제를 활용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총 1만8395명으로 2017년 대비 30.3% 증가했고, 인구 10만명 당 마약사범 수는 35.63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마약사범 중 30대 이하가 전체의 60%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