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근빈 기자/수첩]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건강보험제도가 갖는 중요성과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때문에 수가협상이 보다 합리적이고 세련된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수반됐다.
하지만 2020년 수가협상까지는 기존 패턴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뭔가 달라질 것만 같았던 수가협상은 올해도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도발전협의체를 꾸려 각 공급자 단체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고 요청 자료 등을 공유하면서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변화를 운운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적 문제는 ‘협상’이라는 명칭에 부합하는 형태의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협상은 양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의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여기에 '갑'과 '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갑도 을에게 원하는 바가 있어 협상이 진행된다는 이유에서다.
수가협상도 표면적으로는 이 틀을 준용한다. 상견례부터 시작해 각종 자료를 주고받고 각자의 입장에 대해 항변한다.
수가협상의 공식명칭이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인 만큼 환산지수를 더 받기 위한 공급자의 논리와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보험자의 논리가 치열하게 맞선다.
그런데 모든 협상과정에서 쟁점인 밴딩(추가소요재정)에 대한 정보는 보험자가 확보한 채로 협상이 시작되고 공급자는 이 수치를 모르기 때문에 마땅한 협상 카드를 제시하기 어렵다.
보험자가 밴딩이라는 ‘패’를 갖고 있다면 공급자 역시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그 무엇이 필요한데 구조적으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다.
협상학에서는 그 무엇을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고 말한다.
이는 하버드대학교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가 제안한 개념으로 ‘협상이 결렬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뜻한다.
갑을관계를 떠나 협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인데 협상중단, 파업 역시 일종의 배트나다.
다시 수가협상으로 돌아와보자. 수가협상도 협상이니 결렬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최종적으로 보험자가 제시한 수치를 받지 않으면 공급자는 결렬을 선언한다.
하지만 수가협상 결렬은 배트나로 작용되지 않는다. 결렬되더라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결렬에 따른 패널티는 공급자 몫이 된다. 공급자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얼마 전 수가협상 상견례장에서 임영진 대한병원협회장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당시 임 회장은 “병원장직을 맡으며 다양한 노사협상을 경험했다. 협상이 결렬되면 노조는 파업을 선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부담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수가협상에서는 파업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실제 협상 과정에서 한쪽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수가협상의 개선방안은 배트나를 찾을 수 없는 구조적 결핍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불필요한 밤샘협상, 실효성 떨어지는 SGR(Sustainable Growth Rate) 모형 등 단기적 해결과제를 설정해 나가면서 발전적 협상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할 시기다.
장기적으로는 일정 크기의 빵을 미리 만들어 놓고 나눠먹는 수가협상이 아니라 다양한 토론을 하고 그 의견들을 받아 빵 크기가 결정되는 구조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물론 작금의 현실에서는 먼 얘기로 들리겠지만 협상 다운 협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는 현 정부 기조에 부합하려면 적정수가 보장과 이를 위한 수가협상 방식 변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