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 논의가 올해 국회에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가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의료계에는 긴장감이 팽팽한 실정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열릴 정기국회에서 보험업계 숙원 과제인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달 초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위한 정책 과제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및 전자처방전 등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앞으로 이 과제들을 직접 챙긴다.
국회에서도 꾸준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2020년 7월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배진교 정의당 의원 등을 포함하면 모두 6개 법안이 올라와 있다.
해당 법안들에는 실손보험의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등이 요청하면 요양기관이 진료비 영수증과 계산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업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전문중계기관에 위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법안에는 전송된 자료를 계약자 동의 후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규제 개혁 대상 과제로 꼽으면서 그동안 미온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여당도 야당이 추진하던 해당 이슈를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간호법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통과로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라는 더 민감한 숙제까지 안게 됐다.
하지만 간편화된 실손보험 청구는 환자에게 이익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작용도 만만찮다. 환자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보험사가 취득하게 되고, 보험 가입 거부 등에 악용될 수 있다.
예컨대 산부인과의 경우 초진 기록을 보험사에 보내게 되는데 이때 환자가 유산을 하거나 낙태를 했던 진료 정보 등이 모두 전달될 수 있다.
환자 비밀 정보를 보험사가 보유하게 되고, 심사 과정에서 보험사 직원들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 5단체는 공동 전선을 구축하며, 보험업법 개정안이 개인정보보호 침해 소지가 크고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의협은 실손보험청구간소화대응TF도 구성하고, 지난 8월 첫 회의에서 대국회 활동, 대국민 홍보활동, 의약단체 공동 대응, 손해보험협회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TF는 국회 정무위원회와 소통 채널을 강화하면서, 법안 논의 과정을 지켜보며 의약단체와 함께 공동 대응 방안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의협 관계자는 "TF를 통해 법안 저지를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며 "사실 청구 절차가 간소화되면 그 업무를 의사가 해야 하는지 모호하고, 환자 비밀정보도 제공될 수 있어 개인정보보호 침해 우려도 크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