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높아진 국가인권위원회 “복지부 두고 봐”
문재인 정부서 권고 강화 추세, 복지부 정책 향배 관심
2017.07.14 12:24 댓글쓰기

문재인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강화를 천명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추락한 위상을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다. 대통령이 직접 정례적으로 인권위 특별보고를 받아 정부부처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권고 수용지수 등의 도입을 통해 국가기관의 인권침해를 줄이겠다는게 계획의 골자다. 때문에 대통령 의지로 권고 수용률을 높이는 등 인권위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의료와 복지 등 민생과 가장 접점을 이루는 정책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달라질 인권위 위상을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법적 효력이 없는 인권위 권고를 은근슬쩍 넘기는 관행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편집자주]


인권위, 16년 영욕(榮辱)의 세월

인권위는 김대중 前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2001년 11월 25일 출범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국가기구로, 권력이 저지르는 각종 인권침해 행위를 구제한다.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고, 법적 효력은 없지만 시정권고 등을 내릴 수 있다.
 

인권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꽃을 피웠다.  사형제 폐지, 집회·시위의 자유 보호, 공무원 및 공기업 채용 나이차별 개선 등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권고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인권위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정권 초기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바꾸려 시도했지만 인권단체 등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후 인권위 조직을 대폭 축소하면서 활동 자체를 억눌렀다.
 

박근혜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논란이 되는 인사들을 위원장과 인권위원에 내려보내는 방식으로 인권위의 힘을 뺐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는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때문에 인권위는 이번 문재인 정부의 방침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수용률 제고 방안이 피권고기관의 개선 의지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국민 기본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권고를수용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해당기관의 개선 의지가 없다면 힘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동안 국가기관들의 수용률 현황을 들여다 보면 인권위의 고민과 정부부처들의 불감증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인권위 권고가 법적 강제성이 없다 보니 정부기관이나 공기업 등이 이를 수용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는 얘기다.


우선 인권위 설립 이후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권고 수용률만 보면 90.4%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 수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인권위 권고를 받은 기관들이 핵심만 빼고 부수적인 부분만 받아들이는 일이 잦았던 만큼 90% 수용률에는 다분히 허수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인권위 권고 사항에서 일부만 받아들인 비율은 15.8%로, 정부기관들의 온전한 수용률은 70% 남짓한 수준이다.

뻣뻣한 복지부···열받는 인권위


여느 부처와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 역시 그동안 인권위 권고에 무디게 반응했다. 특히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항의공문’까지 오갈 정도로 껄끄러운 관계였다.


실제 인권위는 지난 2003년 국민연금법개정법률안을 놓고 복지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기결수와 미결수의 연금대상 범위 설정에 대해 복지부의 독단적 행보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를 국민연금 대상에서 제외하고, 미결수는 납부 유예자로 분류하는 절충안에 합의됐다’는 내용의 보도가 인권위 심기를 건드렸다.
 

인권위는 항의공문을 통해 “복지부가 언론에 악의적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을 흘렸다”며 “복지부의 행위로 인해 마치 인권위가 합의한 것처럼 보도됐지만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힐난했다. 아예 복지부의 불수용 행태를 공개하기도 했다. 정부기관의 불수용 공표는 이례적으로, 인권위와 복지부의 불편한 관계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 인권위는 지난 2012년 11월 ‘중학교 이상 학력을 안마사 자격 취득요건 의무화한 의료법’에 대한 개정 권고에 대해 “복지부가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공개 비판했다. 

2015년 5월에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에 계부와 계모도 포함토록 해야 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 권고를 복지부가 무시했다고 공표했다. 복지부의 불수용 방침으로 인해 동일한 내용을 재권고하는 사례도 있었다. 인권위는 지난 2006년 9월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토록 한 ‘지역보건법시행령’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개정을 권고 했지만 복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보건소는 진료를 포함한 건강증진, 질병 예방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만큼 보건의료 업무 전반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갖춘 의사가 우선적으로 보건소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로부터 11년이 흐른 2017년 5월 인권위는 ‘보건소장에 의사면허 소지자 우선 임용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동일한 내용의 법률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이번에도 ‘ 불가 ’ 방침을 고수했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더더욱 의사 보건소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추가시켰다.
 

한편 2001년 인권위 설립부터 2017년 4월까지 보건복지부 정책권고 건수는 총 56건으로, 이 중 ‘불수용’ 6건, ‘일부수용’ 18건, ‘수용’ 18건, ‘검토중’ 14건이다. ‘검토중’은 아직 수용여부에 대한 회신을 받지 못했거나 권고 통보 후 90일이내 기간의 사안이다.


인권위는 보건의료 분야 치부도 여러건 들춰냈다. 지속적인 울림으로 일부 문제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사안도 수두룩하다. 우선 복지부 상대의 정책권고 중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정신질환자 강제입원’이었다. 

인권위는 출범 초기부터 지난해 까지 끊임없이 이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복지부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 지난 5월 30일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전격 시행했다. 하지만 격리나 강박 등 정신질환자 치료방식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도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권위 “지속적인 조사 통해 인권보호 최선”

2005년 3월에는 여성 전공의 인권침해 문제를 짚었다. 인턴 기간 중 3개월의 출산휴가를 사용했다고 6개월을 추가로 근무하도록 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이 권고는 당시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의 도화선으로 작용하며 10년이 흐른 지난 2016년 12월 전공의특별법 시행을 이끌어 냈다.

B형간염 환자의 인권 문제도 여러차례 언급됐다. 인권위는 2007년 1월 ‘활동성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이유로 채용에서 탈락한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의료진의 비윤리적 행태도 꼬집었다. 2011년 7월 인권위는 ‘유명 대학병원이 수술요 특수장갑이 없다는 이유로 에이즈 환자의 수술을 거부한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병원에 대해서는 향후 동일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및 인권교육 실시를, 복지부에는 해당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했다. 그러나 에이즈환자 진료거부 사례는 일선 임상현장에서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인권위는 간호사 등 여성종사자 인권 문제도 접근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른바 ‘임신순번제’, ‘임산부 야간근로 동의각서 작성’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보건의료 분야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 권고를 했다.


당시 복지부에 △의료기관의 자체 여유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방안 마련 △의료기관 인증 기준에 성희롱 예방관리 활동 신설 △보건의료 분야 종사자 인권교육 등을 주문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복지부는 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정책이 많다보니 인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새 정부 정책 기조에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인권과 정책의 배치가 불가피한 영역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그래왔듯 앞으로도 가급적 인권위 권고에 대해서는 수용할 계획이지만 인권과 공익의 가치가 공존하는 부분도 있음을 감안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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