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운동부터 메르스까지···
성남중앙병원 김경구 간호부장 '환자 생명 구하는 최일선에서 28년 보람'
2016.05.04 11:00 댓글쓰기

“후회는 없습니다. 간호사로 일생을 산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부터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사태까지 환자 생명을 구하는 간호사로서 최전방에 있었던 그녀다.

‘28년간 한 병원에서 일한 간호사’,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성남중앙병원 김경구 간호부장(62)을 최근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

지난 1988년 2월 병원에 입사한 김경구 간호사는 올해 30년 가까이 일한 병원을 떠날 예정이다. 대형병원 간호사 쏠림 현상과 간호사의 잦은 이직, 경력 단절 문제 등이 간호계의 주요 화두인 요즘 그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불문과에 진학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여고생은 운명처럼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누군가로부터 소개 받은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지원해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김경구 간호부장은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친구들이 끈기있게 하는 것을 보고 나도 버텼던 것 같았다”며 “간호사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군 복무기간 5년동안 국군통합병원에서 근무했다. 마지막으로 부임받아 일한 곳이 광주통합병원이었다. 그곳에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 사태를 겪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코에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헬기가 부상병과 민간인을 실고 오면 우리는 군의관들과 함께 응급처치를 했다. 뇌가 터지거나 다리가 잘리고 또 총에 맞은 군인, 민간인들이 너무 불쌍했다. 이 경험이 저의 국가관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이후 복무를 마친 김 부장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고, 중동에서 2년간 간호사로 일한 뒤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 몸담고 있는 성남중앙병원에 입사하게 됐다.


성남중앙병원은 1977년 설립된 양친회 병원을 모태로 1982년 성남지역 최초의 종합병원으로 개원했다. 230여병상 규모로, 17개 진료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양친회는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동과 가족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등의 민간 독지가에 의한 순수한 민간 원조기구다. 1954년부터 국내 각지에서 활동해왔다.


지난해에는 메르스 환자가 성남중앙병원을 찾으면서 타격을 입기도 했다. 김 부장은 “메르스 때 병원이 폐쇄 조치를 취하면서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땐 많이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중소병원 간호사 수급 문제 해결 절실"
 
그는 “우리 병원이 워낙 가족적인 분위기인데다 설립자에 대한 존경심과 병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며 “환자가 치료, 수술 후 건강한 모습을 찾을 때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13년 간 간호부장으로 일하면서 중소병원의 구인난은 그에게도 큰 고민이었다.


김경구 간호부장은 "그동안 가장 고민스러웠던 게 인력수급 문제였다.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보니 결혼과 임신, 육아로 인한 1년6개월 정도의 공백기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빈자리를 쉽게 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의 질과 의사와의 유기적인 역할 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칫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을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간호부장이 된 후 줄곧 ‘우리 병원에 제발 좋은 간호사가 찾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실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고 무거움을 피력했다.

김 부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성남중앙병원에서 자녀를 출산했다. 이 곳에서 태어난 딸도 간호사가 됐다.

그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된 것 같다. 직업을 대물림하게 돼 이 일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은 더욱 커졌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엄마를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전문직이자 평생직이고 여러 기회도 잡을 수 있는 직업이다. 잘 살아갈 수 있는 도구를 줬다고 생각한다”며 “큰 보람을 느끼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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