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투 속 의심스런 눈초리 의료인들
거리두는 주변 시선에 자녀들도 불편함 가중…님비(NIMBY) 현상 촉발
2015.06.16 20:00 댓글쓰기

한 달여가 지나가는 메르스 사태에 의료진들과 병원들이 지쳐가고 있다. 사회가 나와 직결된 문제가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전형적인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조차 엿보인다.

 

의료진 감염자는 늘어나고 주변의 시선은 따갑다. 정부는 말로는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지원에는 느린 것 같다. 이 와중에도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은 하나 둘 쓰러져가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5시 반, 대전 건양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코드블루가 떴다. 내과계 중환자실 담당 수간호사인 신모(39)씨도 달렸다. 이미 메르스 환자와 접촉했다며 60여명의 의료진이 격리된 상태라 일손이 부족했다.

 

방호복을 차려입고 도착한 병실에는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36번 환자(82)가 누워있었다. 저산소증으로 심장이 멎은 채였다. 먼저 도착한 전공의는 심폐소생술을 위해 기관 삽관을 시도했고, 기도에서는 피가 올라왔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길 수차례, 의료진 6명은 1시간여 간의 사투로 땀에 흠뻑 젖었다. 그럼에도 결국 환자는 숨을 거뒀고, 신씨는 무의식중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여드레가 흐른 지난 11일, 신씨는 회의 중 열감을 느꼈고 오후 격리됐다. 신씨와 접촉한 주변 의료진 80여명도 함께 격리됐고, 병원 응급실은 폐쇄됐다.

 

지쳐가는 의료진에게 보내는 이중적 시선들

 

현재 건양대병원은 140여명의 의료진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메르스 민관대응팀은 외부 의료진의 투입을 고민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지에서 더 이상의 감염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메르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있다.

 

16일 기준 154명의 메르스 확진자 중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 종사자만 26명 약 17%에 달한다. 코흐트 격리가 이뤄진 9곳을 포함하면 수백명의 의료진이 가족의 품조차 멀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며 곳곳에서 의료진의 고통과 어려움을 격려하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간호대학 교수라고 밝힌 이의 '메르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에 이기우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는 "의사, 간호사 등 모든 의료 관계자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라고 자신의 SNS를 통해 남겼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의 편지글을 읽고 "너무 큰 감동에 눈물이 맺힌다. 김현아 간호사님, 의료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말고 뒷걸음치지 말고 지금처럼 용기를 내어 메르스와 싸워 이겨주세요"라는 응원 글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의료인과 그들의 가족, 주변인들을 보균자 취급하며 눈물짓게도 했다. 의료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의 등교를 거부하거나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가하면 메르스 의심환자가 주변에 있다며 주의를 당부한 아파트도 있었다.

 

실제 임시폐쇄 조치가 이뤄졌던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33)씨는 "환자들이 보이는 꺼림과 주변에서 보내는 따가운 시선에 힘이 빠진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족이나 지인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점차 외톨이가 돼가는 것 같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아내를 의사로 두고 있는 김모(34)씨 또한 "우스갯 소리겠지만 의사 부인 둬서 좋겠다던 말 대신 '괜찮냐', '안쓰럽다'는 말과 시선들이 많아졌다"며 "아내 스스로도 위축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의료진과 가족의 고충을 전했다.

 

7살과 3살 된 두 딸의 어머니이자 내과의사인 최모(37)씨는 "자녀들을 유아원에 보내지 말아달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휴교도 풀리고 대통령이 나서서 학교에서의 감염을 불식시키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인식을 바꾸기엔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자녀들 근거 없이 불이익 당하는 사례 없어야"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오후 "의료진은 메르스를 퇴치하기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고마운 분들"이라며 "그 자녀들이 근거 없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의 말을 남겼다.

 

대전시 강철구 보건복지여성국장은 "일부에서 SNS를 통해 개인 신상을 퍼나르는 일도 있는 것 같다. 이는 사회적 살인행위"라며 "메르스와 싸우는 의료진과 그 가족을 따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잇따르자 대한의사협회는 메르스 의료진과 그 자녀가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조치해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했고, 질병관리본부는 부처간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과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합쳐지며 병원을 찾는 이들이 급격히 줄었다. 대략 외래환자수는 10~30%, 병상가동률은 20% 이상 감소한 상황인데다 일부 병원에서는 당장 이달 직원들 급여를 걱정해야하는 여건이다.

 

그럼에도 당초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총리대행)이 약속했던 200억원 규모의 긴급 자금지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병원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논의에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 보전을 할지에 대해 계속 검토 중"이라며 "노출자 진료병원이나 메르스 치료병원을 대상으로 지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치료 병원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고 구체적인 신청 절차나 지원 방식 등을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중앙대책관리본부 관련 의료계 관계자는 "메르스 확산 방지와 병원 내 감염 대처가 시급한 문제"라며 "모든 초점이 여기에 맞춰져있어 근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앞서 정부가 비영리기관과 중소병원에 대한 지원을 언급했지만 뚜렷한 지원계획이나 지침이 없다"면서 "구체적인 피해 규모나 병원들 추계는커녕 관련 통계나 자료도 없다. 기재부와도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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