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없이 간호사 사명감에 의존 대한민국
'신종감염병 대비 인력‧교육‧장비 등 대응책 갖춰야'
2015.07.27 20:00 댓글쓰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종식에 접어들었지만 정부와 병원이 신종감염병에 조직적·체계적 대응 없이 간호사들의 사명감에 의존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종 감염병 간호를 목숨 걸고 수행한 간호사들은 27일 국회에서 개최된 ‘메르스 이후 간호사의 직업안전과 감염예방’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이 토로했다.


먼저 서울대병원에서 메르스 환자를 간호했던 최은영 간호사는 “혼선 속에서 모든 일들이 전부 환자를 가장 처음 접하는 간호사의 역할이었다”며 “그러나 간호사들은 보호복 착용법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호를 시작했고 장비·메뉴얼 등이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최 간호사는 “메르스 환자가 오면 동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입원·퇴원 수속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식사 신청은 어디서 하는지 등을 알지 못했다”며 “간호사 절반은 보호복을 입어보지 못했는데 착탈복 교육을 요청해도 그림 보고 입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직접 비상연락망, 의료진 관리, 음압실 출입경로, 청소방법, 쓰레기통 관리 및 처리, 세탁물 관리 등의 매뉴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그는 “메르스 초기 간호사들 걱정에도 불구하고 ‘N95마스크만 착용하면 된다’, ‘의료인이 일반인처럼 굴지마라’, ‘오버하지 마라’ 등 괜찮다는 이야기만 들어야했다”며 “진짜 죽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간호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 간호사는 “의료진의 안전 대책없이 사명감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며 “숙련된 인력과 장비, 안전에 대한 대책마련,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심리적 지지와 상담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의료대본부에서 최근 간호사 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비율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감염병 예방관리에 충분한 인력을 확보했느냐는 질문에 58%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으며 예방보호구를 충분히 갖추고 있느냐는 물음에도 51%가 "아니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순천향대 간호학과 전경자 교수는 “간호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들었지만 조직적·체계적 대응은 정말 취약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번 메르스 사태는 방호복을 착용한 상태로 음압병실이라는 완전 고립된 공간에서 격리된 상태의 환자를 간호하는 최초의 경험이었다”며 “그러나 확진자 총 186명 중 의료인이 39명(21%), 그 중 간호사가 15명(8.1%)로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감염관리에 준비된 전문인력 없이 오로지 간호사의 팀워크에 의존했다는 것이 전경자 교수의 지적이다.


전 교수는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병원 간 인력 지원이 보건복지부, 민간학회 주도로 실시됐다”며 “그러나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보지 않은 간호사들이 감염병이 발생한 상황에서 업무를 수행하기는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강동경희대 사례처럼 병원 내 감염에 취약한 부서가 존재하는 만큼 응급실, 중환자실, 격리병동, 인공신실 등 해당부서에 감염관리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감염발생을 대비해 인력을 확보하고 교육훈련, 보호구 및 물품지급 규정 마련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번 메르스 사태 이후 간호사의 직업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명희 연구위원은 “병원에 기반한 감염병 유행과 의료진의 직업안전보건 문제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각각 감염병 예방‧관리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조율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김정연 사무관은 “메르스 정국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주요부처 회의에 빠지는 등 참여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보건복지부가 너무 바빠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며 “향후에는 병원 근로자들의 안전관리에 대해 복지부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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