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 태아손상訴 '승(勝)'
근로자 태아장애 산재 인정 첫 판결, 비슷한 근무환경 등 영향 예고
2014.12.21 20:00 댓글쓰기

[분석] “여성근로자가 임신 중 업무로 인해 태아의 건강에 손상이 생겼다면 이는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

 

2009년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잇단 유산 및 출산한 자녀들의 선천성 심장질환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작된 법정 공방은 최근 간호사들의 ‘승소’로 일단락됐다.

 

근로자의 태아 장애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여부를 판단한 최초의 판결이다. 간호사들 근무환경과 병원의 제도 및 문화에 미칠 영향도 지대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판사 이상덕)은 지난 19일 제주의료원 간호사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신청 반려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09년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 2010년 12명 중 4명이 유산을 했다. 임신 후 태어난 자녀 10명 중 4명은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지니고 태어났다.

 

간호사들은 의사로부터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 심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해 이런 질병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유산과 자녀의 선천성 장애가 의료원 내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라고 판단한 간호사들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는 입장을 표했다.

 

특히 간호사들은 근무 중 알약을 분쇄하는 과정(파우더링)에서 분출된 약가루를 흡인했고 이에 따른 영향이 컸다고 주장했다.
 
이후 언론 조명과 시민단체의 비판이 이어지자 2012년 의료원 측은 노사 합의 하에 유산관련 역학조사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의뢰했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간호사 8명은 이듬해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심장질환 아이를 출산한 간호사 4명은 산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행법에는 태아에 대한 재해가 명시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간호사 4인은 지난 2월 산재를 인정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법원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이며 태아에게 미치는 어떤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 권리·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 자녀의 선천성 심장질환은 임신 초기 태아의 건강손상에 기인한 것이고 태아의 건강손상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음 세대를 건강하게 재생산하지 않고서는 국가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으며,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 헌법은 국가의 모성 보호 의무를 천명하고 있다"며 "이에 근거해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는 더욱 두텁게 보호돼야 하고 산재보험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불리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주의료원 관계자는 “현재 제주의료원은 간호등급 5등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논란이 제기된 이후 의료원 약제과에서 파우더링이 이뤄지는 등 보호장치가 마련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제주의료원 간호사 A씨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간호인력이 더 보충돼야 하고, 휴가와 병가 등의 보상제도 역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인력 확충이 근원적인 해법이다. 우리나라 간호사 인력은 OECD국가에 비해 1/2~1/3 수준”이라며 “간호사 인력이 부족해 임신순번제를 실시하고 있다. 과도한 업무량과 열악한 환경은 모성보호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근로자가 안전하지 못한 병원은 환자도 안전할 수 없다”며 “근원적인 정책 마련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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