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 메르스 참사 고군분투 '의료계'
정부 갈팡질팡 여론 '악화'…의료진에는 격려편지·현수막 등 '훈훈'
2015.07.07 12:00 댓글쓰기

[기획 2]29%. 지난 6월 19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다.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햇다. 반면 부정적인 비율은 61%였다.


무엇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을 이렇게까지 떨어뜨렸을까. 바로 2015년 상반기 최대 사회적 고민거리였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였다.


지난 5월 20일 국내 최초 메르스 양성 환자가 발생했다. 감염은 빠르게 확산됐다. 불과 10일 남짓한 사이 메르스 양성 환자가 18명으로 늘어났다. 5월 31일 기준 격리 대상자는 682명이었다.


6월이 되자마자 메르스 의심환자가 첫 사망 사례가 나온다. 하루 앞선 5월 31일 보건복지부 문형표 장관이 “메르스 전파력 판단에 미흡했다”는 사과 성명을 발표한 직후였다. 여론은 싸늘해져갔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은 급증하기 시작한다.

 

“낙타 우유 섭취? 낙타를 보는 국민이 몇이나 되나”


이번 메르스 사태의 핵심 중 하나는 ‘초기대응 실패’다.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을 못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신뢰할 수 있는 대책보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예방법을 제시해 여론의 뭇매를 자초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낙타와 접촉하지 말고, 낙타 우유 등 관련 음식을 섭취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메르스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가 나온 직후 가장 밀접한 정부기관이 내놓은 대책이 고작 ‘낙타 예방’이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같은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곧바로 인터넷, SNS 상에서 정부 예방법을 풍자한 게시물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 시민의식은 참으로 대단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출근길에 낙타를 꽤 많이 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보건복지부가 메르스 예방법을 내놓은 직후 낙타를 단 1마리도 볼 수 없다”고 조롱했다.


심지어 낙타 모양의 분장을 하고 지하철을 타는 네티즌의 사진은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극도한 불신감이 교묘한 풍자로 이어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각종 합성 사진, 문구들이 SNS를 통해 한없이 재생산됐다.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박근혜 대통령은 첫 메르스 관련 회의를 열게 된다. 무려 첫 번째 양성 환자가 나온 뒤 13일만이었다. 그 때까지 청와대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국무총리는 공석이었다. 초기 대응에 있어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다는 지적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사망자 격리자 급증 불구 정부·여당 잇단 말실수


메르스 양성 환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사망자도 속출했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은 자택격리 조치됐다. 더욱이 의료진 감염 사례가 나오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또 다시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중순 동대문 시장, 초등학교 등을 방문해 메르스가 곧 진정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지장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메르스는 중동 감기이기 때문에 손 씻기, 마스크 착용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습관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라며 “더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는 한 대학교 특강에서 “북한 핵무기는 무서워 하지 않으면서 중동 감기에 불과한 메르스에는 과도한 걱정을 하는 국민들이 문제”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미 사망자가 계속 나오고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자택 격리자 숫자를 보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르스를 단순히 ‘중동 감기’로 표현하는 것은 전혀 국민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 “보여주기 식 행정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부 네티즌은 “지금이 70, 80년대도 아니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모르는가”라는 식이 비꼬는 댓글을 올렸다.


야당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행보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를 단순히 ‘중동식 독감’이라고 표현하면서 손 씻기 등 몇 가지 건강습관 실천으로 대비하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정부가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메르스 감염 보상대책을 내놓은 것도 ‘촌극’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만약 메르스에 감염되면 30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병헌 최고의원은 “이것이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인지 모르겠으나, 정부가 무능한 대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꼴”이라고 날을 세웠다.


결국 이번 메르스 사태 관련 정부와 국민 사이에 전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불신만을 쌓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 복지부가 초기 메르스 환자 경유병원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 점도 한 몫 했다.


정부는 “SNS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는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만 밝혔다. 그러나 지난 6월 4일 서울특별시 박원순 시장이 심야회견을 통해 메르스 환자 경유병원을 전격 공개하면서 하루 만에 비공개 원칙을 철회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의료진 자녀 왕따?…“힘내세요 의료진”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6월 17일 교육부에게 메르스 의료진 자녀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메르스 감염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편견이 형성되는 것에 대한 우려감에서 비롯됐다.


다행히 ‘의료진 자녀 왕따’ 현상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에서는 메르스 사태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호의를 넘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메르스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건양대병원 간호사가 결국 확진 판정을 받자 후배 간호사들이 쾌유를 기원하는 모습은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당시 건양대병원 간호학과 학생회장 성지현 양은 “메르스에 감염된 선배 간호사가 부디 아무 탈 없이 의료현장에 복귀하길 희망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한노인회(회장 이심)에서는 의협을 직접 방문해 격려금 1000만원을 전달하며, 의료진의 기운을 북돋았다. 이심 회장은 “추무진 회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의료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메르스 사태 조기 종식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첫 투석실 메르스 감염 환자가 발생한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는 온정의 손길이 전해지고 있다. 송파구 송파동 소재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은 직접 쓴 편지를 들고 강동경희대병원을 찾았다.


강동경희대병원 이형래 경영관리실장은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받은 건 편지 이상의 따뜻한 마음”이라며 “응원과 격려에 힘을 얻어 메르스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환자의 안전과 메르스 퇴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 성빈센트병원, 건양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전국 각지를 가리지 않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감사와 격려를 전하는 글이 급증하고 있다. 병원마다 출입구에는 ‘진정 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의료진 여러분 힘내세요! 우리가 함께 당신을 응원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연이어 게재되고 있다.


한 의료계 인사는 “우리도 사람인데 메르스 감염에 대한 왜 두려움이 없겠는가”라며 “무엇보다 감염 확산 차단과 환자 생명이 최우선이다. 의사, 간호사 등 직종에 가릴 것 없이 모든 의료진은 메르스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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