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보는 듯한 표정·말투 잊혀지지 않아'
가슴 속 피멍 든 A 원장, 건보공단 무차별적 현지조사에 울분 쌓이는 개원의들
2015.09.01 20:00 댓글쓰기

[기획 上]건강보험공단이 무차별적 현지조사에 고개를 떨구는 개원의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대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설령 건보공단이 표준운영지침을 따르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이유는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처벌규정을 만들 수 없더라도 급여사후 대상기관 선정심의위원회에 의료계가 참여해 객관적인 근거자료와 구체적 사실조사 없이 요양기관의 부당이득금을 징수, 결정하는 일이 지금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 현지조사에 급제동이 필요한 시점이다.[편집자]


지난 8월 29일, 서울 강북구 소재 한 의원. 쉬임없이 환자들이 오고가는 중에도 진료실 내에는 어딘지 모르게 복잡한 서류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 병원 원장이 건강보험공단 직원의 현지조사에 ‘대응하기 위한’ 흔적이다.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서류 사이에는 건강보험공단, 감사원 등으로부터 전달된 공문들이 끼워져 있다.


‘맘 편히 진료하고 픈’ 그의 바람과는 달리 올 들어 이 병원을 훑고 간 현지조사 후유증은 A원장의 가슴에 큰 생채기를 남겨 놓았다.


“의심가는 구석 있다?”…수술까지 중단시키는 일방적 조사


지난 4월 15일 오전 건보공단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자 오후 3시 공문을 들고 건보공단 성북지사 직원 2명이 갑작스럽게 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30분 가량 면담이 이뤄졌다. A원장이 그들에게 방문 이유를 묻자 민원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아 불쾌한 감정을 느끼던 차에 건보공단 직원은 A원장에 '내시경 이중청구'를 지적했다. 곧 바로 A원장은 "그런 말은 없는 단어다. 혹시 본인이 지어낸 단어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해당 직원은 타 병원은 후두경, 코내시경을 동시청구하지 않는데 왜 유독 이 병원만 많은 것이냐며 의심할만한 여지가 있다고 했다.


A원장은 "그러더니 현행 법상 6개월 이내 진료자료만 요청할 수 있는데도 이를 어기고 7개월치 자료를 요구했다. 그 자리에서 35명의 환자기록지, 주민번호 등도 전부 공개됐다. 본인부담수납대장까지 순식간에 환자들의 '민낯'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분개했다.


A원장은 "분명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2주라는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은 또 다시 찾아와 원본대조 확인 후 도장을 찍고 자료를 가져갔다. 급기야 4주 후에는 공문없이 찾아오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기 환자가 많았음에도 그 자리에서 진료는 중단됐고 건보공단 직원의 추가 수납대장 요구에 1년 5개월치 원본자료까지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A원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차례 더 방문을 예고한 어느 날은 수술 중이니 수술이 끝난 후 방문해달라며 통화를 마쳤으나 불시에 공문을 들고 또 찾아와 결국 수술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맹비난했다.


과연 A원장은 건보공단이 이토록 '끈질기게' 표적으로 삼을만한 부도덕한 진료를 일삼은 것일까.


"외이도 이물(머리카락,이물질,귀고름)이나 이구전색(귀지)제거가 많네요? 다른 병원은 한 달에 10건 미만으로 보이네요. 다른 병원은 많이 하지 않는데 여기 병원은 유달리 많습니다. 환자가 불편해 하지 않은 귀지제거를 왜 이렇게 많이 합니까?."


"네? 횟수에 대한 근거자료를 주시죠. 실제 외이도 이물제거가 많습니다. 유달리 많이 청구된 특이한 환자 한명을 찾아서 이렇게 일반화 시키는 게 말이 됩니까. 귀지떡을 심한 경우만 언급하는데 그렇게 편협적으로 해석하지 마시죠."


당시 건보공단 직원과 A원장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질문과 답변은 한 시간 가량 이어졌지만 건보공단 직원의 의혹의 눈초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A원장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미 무언가 비양심적인 진료를 일삼은 양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따져 물었다"며 "정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명백히 진료를 방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A원장은 "당시 동행했던 건보공단 또 다른 직원도 타 병원은 수기작성을 바로 하는데 왜 바로 하지 않느냐고 했다. 진료가 우선이고 이후 작성한다고 답했음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비웃기까지 했다"고 떠올렸다.


"더 이상 못 참아, 현지조사 거부" 선언


 

A원장은 지난 봄부터 이어져 온 건보공단의 무차별적 '현지조사'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다가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요즘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당시 협박을 받는다는 감정과 함께 느낀 불쾌감은 지금 생각해도 정도가 지나치다”고 언급했다.


A원장은 “우리 병원은 타 병원서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찾아온 환자들이 많다”며 “병원마다 특수성이 있는 것 아닌가. CT도 보유하고 있어 이렇게 정밀한 진료를 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전원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이 역시 인정한 바다. 다른 병원과 진료를 비교하면서 나와 우리 병원을 재단하지 말라고 하자 당시 그들이 지었던 표정을 복기해 보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3주가 또 흐른 어느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결국, A원장은 선언했다. "더 이상 조사를 거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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