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보낸 생지옥 고별사
'의료한류 자부 대한민국, 이렇게 쉽게 무너질줄 몰랐어요!'
2015.10.12 12:00 댓글쓰기

[기획 1]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 지경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명색이 의료한류를 자부하던 대한민국 아니었나요?


더욱이 앞서 대통령과 의료 사절단이 제 고향인 중동을 찾아 수 천억원에 달하는 의료 수출 성과를 올리기도 했잖아요. 그 대단한 의료강국이었기에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죠.


적어도 지난 5월 4일 제 첫 번째 숙주인 그 분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을 때까지는 그랬어요. 물론 당시는 숙주 적응기라 바짝 엎드려 있었죠.


그래서였을까요? 인천공항은 무사통과했어요.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지역을 활보했던 나는 어떤 저지도 받지 않고 당당히 출구를 빠져나갔어요.


‘의료강국’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제 활약상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그래요 짐작하신대로 저는 머나먼 중동에서 온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랍니다.


중동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MERS-CoV(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내친 김에 제 소개를 조금 더 할께요. 저 역시 사스(SARS)와 마찬가지로 박쥐에 기생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박쥐가 낙타의 피를 빠는 과정에서 숙주를 옮겼죠.


낙타는 박쥐보다 몸집도 크고 영양분도 많아 살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아예 눌러앉기로 작심하고 낙타의 몸에 맞춰 변화했죠. 그게 한 20년쯤 됐네요.


그러니 ‘신종 바이러스’라는 별칭은 좀 어색하네요. 낙타 도살장 인부들은 일찌감치 저를 경험했죠. 치사율이 40%로 높았지만 사스나 에볼라처럼 주목받지는 못했어요.


차치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께요. 한국에 들어온지 일주일 쯤 지나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 숙주는 고열과 기침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죠.


그렇게 빨리 의사를 만나게 될지 몰랐어요. 세계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의료 접근성은 역시 듣던대로 였어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은 정말 부러웠어요.


대한민국 의사와의 첫 대면은 싱겁게 끝났어요. 단순 감기로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더군요. 물론 제게는 무용지물이었죠.


제 숙주는 여의치 않았는지 좀 더 큰 병원을 찾았어요. 제 위력의 첫 선을 보인 무대는 바로 평택성모병원이었지요. 입원 진단이 내려졌고,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어요.


입원실은 2인실이었요. 나란히 누워있는 환자, 그리고 그를 지키는 보호자. 밀폐된 공간에서 다른 숙주로의 이동은 식은 죽 먹기였어요. 옆 병동 환자, 의료진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어요. 환자는 물론 의료진도 이역만리에서 온 제 존재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이었겠죠.


제 숙주의 상태가 심각해지면서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겼어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병원답게 그 위용은 대단했어요. 그렇게 크고 사람 많은 병원은 저도 처음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병원의 응급실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밀려드는 환자에 북새통이었고, 환자들이 누운 침대는 복도까지 즐비했어요.


그 광경을 보며 감염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죠. 사람이 아닌 이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를 숙주로 삼아야겠다는 욕심이 났어요.


무방비 상태였던 대한민국 의료에 제 식구를 늘려가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았어요. 환자, 보호자, 의사, 간호사, 간병인 모두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었어요.

 

속수무책 붕괴된 한국 의료체계


제 존재가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발칵 뒤집혔어요. 생소한 감염병 출현이 처음은 아니었을텐데 정부는 유독 허둥지둥했어요.


정부의 잘못된 인식은 초기 대응 실패로 이어졌어요. 저를 때려눕힐 감염병 방역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컨트롤타워도 없었어요.


‘설마 심리’가 작용했을까요? 아니면 저를 너무 과소평가했을까요? 처음에 질병관리본부장이 맡았던 지휘권은 복지부 차관을 거쳐 복지부 장관으로 격상되는 등 연이어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제 경로를 꽁꽁 숨기는 정부에 분통을 터뜨렸어요. 정부는 오히려 “경로를 공개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겠다”며 윽박까지 질렀어요.


정부의 불통 정책이 오히려 화를 키웠어요. 저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고,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병원은 감염의 온상으로 인식되며 사람들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어요.


특히 부모가 의사, 간호사라는 이유로 자녀들이 친구의 따돌림에 시달리고 급기야 등교까지 거부 당하는 사태에 이르렀죠.


또 1번, 14번, 35번 등 많은 환자가 번호로 표기되는 기현상도 경험했어요.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과 삶이 있었을텐데 전염병 세상에서는 ‘번호 인간’이 돼버리더군요.


제 활약상은 대한민국 경제도 충격으로 빠뜨렸어요. 상반기 내수 시장 회복을 주도하던 여행, 레저, 운송, 유통 등의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죠.


6월 외국인 관광객 입국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나 줄었다죠? 저로 인한 GDP 손실 규모만 9조원이 넘는다는 추계도 나왔네요.


그 엄청난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결국 혈세로 메워야 한다니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네요. 무능 정부의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한게 아닌가 싶네요.

 

불신(不信) 속에서 빛난 희망


환자 186명 발생. 사망 36명. 격리 1만6000명. 무려 100일 가까이 진행됐던 혈투의 결과에요. 더 이상 신규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니 사실상 제 운명이 다했다고 봐야죠.


얼마 전까지 저를 내치지 못했던 마지막 80번 환자가 완치 판정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상 저의 종식을 선언했죠. 최근에는 사태 수습을 위한 후속 조치를 단행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네요.


박근혜 대통령은 전문성 부재의 질타를 의식해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을 임명했죠. 미흡했던 컨트롤타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고 감염병 대응 총괄권도 부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응급실 입구에서부터 감염위험 환자를 선별 진료하고, 음압·격리병상 확보 및 분리진료를 의무화 한다고 하네요.


또 방문객 출입 제한 및 명단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과밀화 해소를 위해 응급실 입원대기를 평가하고, 대형병원 응급실 경증환자 유입감소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세웠죠.


구구절절 마땅한 조치들이죠.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구요. 이 계획들이 각오로 끝나지 않고 제대로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되네요.


이제 곧 물러갈 신세이지만 고별 인사에 앞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네요.


‘방역 후진국’이라는 오명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겠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도 결코 녹록치 않을거에요. 그 숙제는 오롯이 초기대응 미숙으로 사태를 키운 정부의 몫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지난 100일 동안 한국 의료진의 열정과 저력에 감동했어요. 환자를 위해 사투(死鬪)를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땀방울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어요.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은 “우리가 뚫리면 나라가 뚫린다”며 격리 병동 속에서 저지선을 사수(死守)했어요. 확진환자 5명 중 1명이 의료진일 만큼 위험한 임무였는데도 말이죠.


제 공격을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의료진의 목숨 건 사투(死鬪) 덕분이었어요. 세계가 인정하는 ‘의료강국’ 대한민국은 시스템과 술기도 아닌 너무도 따뜻한 의료진의 '환자애(愛)'였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행복한 국민이라구요.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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