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에 답답해지는 ‘중소병원’
비급여 의존도 높은데 전면 급여화 예고 '경영난 악화' 우려
2017.10.24 06:26 댓글쓰기

[기획 4]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의료복지 확대를 위해 천명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중소병원 등 일차의료에 미칠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만만찮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비급여의 사실상 전면 급여화다.

하지만 병원을 포함한 중소병원의 경우 비급여 진료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어 적정 의료수가가 우선 마련되지 않는 한 병원경영이 어려워 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공명영상(MRI)도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에 편입될 예정인데, 이 같은 급여화 확대로 인해 환자들의 대형 병원 쏠림현상 가능성도 높아 의료쇼핑족을 양산할 것이란 시각도 나오고 있다.

“비급여 전면 급여화, 의료기관 치명타”
의료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재인 케어’의 본격적인 시행에 앞서 적정수가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에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이용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비급여는 저수가 고효율의 한국 의료제도를 버티는 한 축”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한 문재인 케어는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용민 소장은 “수술하다가 환자의 심장이 뛰지 않을 경우 산소를 공급하며 심폐소생술(CPR)을 한다”라며 “그런데 의료계 사정을 도외시하는 것은 마취를 유지하기 위해 질소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치명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성규 대한병원협회 기획위원장도 “비급여의 급여화 전환 시 급여 우선순위, 필수 급여 여부 등에 대해 전문가 단체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의료기관 운영에서 비급여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수가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의료공급체계 붕괴까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병원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비급여 비중이 60~70%정도로 높은 척추전문병원들은 50%를 넘는 삭감률부터 정상수준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병원 관계자는 “척추전문병원의 경우 살인적으로 높은 삭감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비급여가 많은 것”이라며 “심사조정을 통해 삭감률을 정상수준으로 맞추는 것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급여화부터 추진하면 전문 병원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 가령 1,000개 병원이 문을 닫으면 20만~10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라며 “일자리 창출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보험개발원이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의 진료비 중 급여와 비급여의 구성비율을 분석한 결과, 실손보험의 비급여 비중은 36.3%로, 건강보험(17.3%)의 2배로 조사됐다.

실손보험에서 비급여 비중은 의원급이 52.3%로 가장 높았고, 일반병원(41.2%), 종합병원(28.5%), 상급종합병원(30.7%) 순이었다. 병원 규모가 작을수록 비급여 의료비에 더 많이 의존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의료 수가의 정상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용민 소장은 “국민이 원하는 질 높고 안전한 의료서비스와 친절한 서비스 제공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은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에 대한 야박한 보상체계”라며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현재 75% 수준의 의료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을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일차의료에도 CPR이 시급하다”며 “재정 지원(Capital support), 유능한 일차진료를 확보(Practice training), 진료의뢰 및 회송체계를 개선(Referral system) 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를 공개하라는 등 의원급을 향한 전방위적 압박은 이어지는 모습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복지위원회 결산분석을 통해 “보건 복지부는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완화와 알 권리 강화를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여부와 범위 등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의료기관에 대해 실시한 표본조사를 바탕으로 지난 4월부터 의료기관별 비급여 진료비를 심평원 홈페이지와 모바일 앱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공개대상 병원 숫자는 기존 2041곳에서 3666곳으로 늘었으며, 공개 대상항목도 52개에서 107개로 증가했다.
현행 ‘의료법 제45조 2항(비급여 진료비용 등의 현황조사 등)’에 따르면 복지부장관은 ‘모든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비용의 항목·기준·금액 등을 조사하고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복지부는 의무규정으로 돼 있는 병원급 의료기관만 결과를 공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관리하는 숫자가 많고 (전체 의료기관의 94%), 비급여 항목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하며 의료기관 부담 등 선결과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산정책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2007년 21.9%에서 2015년 18.8%로 감소한 반면 의원급은 같은 기간 9.8%에서 14.8%로 증가했다”고 지적하며 의원급 비급여 진료비의 공개를 촉구했다.

“문재인 케어로 의료전달체계 붕괴될 수도 있어”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 문재인 케어가 환자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완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동시에 의료공급자 입장에서는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야기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이는 국가의 의료비 지원이 높아짐으로써 환자들이 첨단기술의 검사와 장비를 기반으로 명성 있는 의사와 수술 서비스가 제공되는 상급병원 이곳 저곳으로 의료쇼핑을 일삼는 것을 막을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국정감사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연간 진료 일수가 365일이 넘는 수급권자는 2013년 64만4천명, 그중 7만764명은 무려 1,000일이 넘었다.

진료일수가 5000일이 넘는 수급권자도 6명으로 나타났다. 제도 남용으로 밥 먹듯이 병원을 드나드는 환자들이 늘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문재인 정부 건강보험 보장 강화 대책의 문제점 및 과제’ 보고서에서 ‘문재인 케어’가 시행되면 의료 이용자가 크게 늘어나고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주경 입법조사관(보건학박사)은 “우리 나라의 입원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2배 이상”이라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의료기관 이용량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용의식이 낮아진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에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이와 함께 경제적 장벽으로 인해 억제돼 있던 잠재적 의료 수요까지 가시화될 경우 정부가 추계한 비용을 초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병관 대한중소병원협회 기획이사도 한 토론회에서 “문재인 케어’는 대형병원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중소병원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원가 보전 없는 비급여의 급여화 및 무분별한 간호·간병서비스 확대는 중소 병원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건강보험 제도에 참여하는 전체 의료공급자 역할과 기능을 유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색하고 비급여 급여화 추진에 있어서도 의료계 참여를 확대하는 대안 마련과 점진적으로 추진되는 의료체계 개편을 위한 기초정보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의료수가의 적정화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수가 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끊임없는 의료계의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9월 2일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및 시도의사회의 긴급회동에서는 적정수가 수준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정부 제안 협의체 구성도 결렬되는 등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의 줄다리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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