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폭언·폭행에 곪아 온 병원계
병동내 고통받는 전공의 여전히 많아···폐쇄적·도제식 ‘관행’ 극복 절실
2017.12.30 06:25 댓글쓰기

[기획 1]올 한해는 병원 내 전공의 폭행 및 성추행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됐다. 부산대병원은 교수가 수년에 걸쳐 다수의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충격을 줬다. 특히 병원측이 피해자들을 협박·회유하고 사건을 축소했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것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폭행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했다. 전공의 폭행으로 인해 해당 병원 진료과는 전공의를 선발하지 못하게 되는 강력한 처분도 받았다. 간호계에서는 춘천성심병원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이렇듯 의료계에 뿌리 깊은 갑을 문화는 언제쯤 변화할 수 있을까. 수련환경 개선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다른 이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공간 속에서 지성이 아닌 군기가 만연했고, 폭행은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전공의 폭행을 둘러싼 대책 마련은 현재 진행형이다. 거센 후폭풍은 지나갔지만 전공의는 ‘소통 불가’ 현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봇물 터지듯 터지는 느낌이랄까. 부산대학병원 정형외과 한쪽 구석에서 벌어진 가혹한 폭행이 세상에 알려지며 떠들썩한 것도 잠시, 다른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얘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오죽하면 신고했을까’ 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군대 폭력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접할 수 있는 폭력만큼 잔인하다는 것이다.

수 년 전,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련을 한 후 현재 다른 병원에서 임상강사를 하고 있는 A씨는 믿기 힘든 이야기를 했다.

모욕적 언사는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물리적 폭력의 경우에는 외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 즉 어디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일상적이라는 얘기다.

A씨는 “교수님이 환자 앞에서 차트로 머리를 내려치거나 폭언을 하더라도 그것이 인격 모독인지 생각조차 못했다. 시스템 안에 갇혀 있으면 그렇게 된다”고 토로했다.

비단 교수들에게만 당하는 폭력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선배 레지던트의 논문 작성은 물론 각종 학회와 관련된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선배가 작성하는 논문 자료를 찾는 것은 기본이었다.

선배들의 학회 제출용 동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A씨 몫이었다. 선배 레지던트의 컨퍼런스 발표 논문을 요약해 파워포인트 (PPT)로 만들어 갖다 바치는 일도 자신의 역할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제는 예전과 달라졌다”고 하는데 도무지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얘기들이었다. 여전히 전근대적인 ‘의국 문화’가 잇따른 전공의 폭행 문제의 진원지가 아닐까.

A씨는 “의과대학은 외부에서 이해하기 힘들 만큼 폐쇄적이고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학업 과정 6년과 전공의 과정 5년까지 합치면 과 선배들을 10년 이상 계속 만나야 한다.

“폭행 당하고도 숨어 지내”

의사를 양성하는 시스템과 교육이 도제식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견도 내비쳤다. 한국에서는 1년차가 아무리 뛰어나도 2년차를 뛰어넘을 수 없고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구조다. 2년차가 1년차를 가르치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전공의 폭력과 연관된 어떠한 문제라도 수면 위로 떠올라 해결되길 바란다 해도 제3자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전공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댈 곳이 없다는 얘기다. 결국 전공의협의회로 피해 내용이 접수되지만 전공의협의회 차원에서 각 수련병원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정들을 뒤로 하고 ‘해결사’로 나설 수 없는 한계가 있다.

A씨는 “어쩌면 알려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서 본인이 폭력을 당하고도 숨어 지낸다.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 하다. 그래서 일단 신고되는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오죽하면 신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환자의 목숨과 직결된 공간에서 일한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서른 살이 넘어 결혼까지 하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이런 식의 폭력을 쓰는 것은 용납돼서는 안 된다.

누군가는 의사라고 하면 시쳇말로 배울 만큼 배운 엘리트 들인데 어떻게 이런 비이성적이고 반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냐고 혀를 찬다.

A씨는 “진짜 문제는 이런 일들에 대해 일부 의사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데 있다. 불만을 제기하는 등 분란을 일으켜봤자 득(得 )될 게 눈꼽 만큼도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남아있는 내 인생이 수 십 년 인데 전공의 4년 정도는 참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지금의 ‘교수님’이 젊은의사들의 앞날을 좌지우지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마치 회전문을 돌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때린 교수가 주눅이 들어야지 왜  맞은 전공의가 주눅이 들어 쉬쉬해야 하는가.
물론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은 엄격하게 교육받아야 한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우리도 옛날에 그랬다”는 것이다.

A씨는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논리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시대”라며 “지금은 인터넷으로 그런 사실이 공개되기도 하고 다른 곳과 비교하니까 문제가 불거지고 대책도 마련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매 맞는 전공의, 결국 국민건강 위협 ‘적신호’

폭행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며 환기 시키기도 했다.

대학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의사가 인턴이고 레지던트다.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국민건강 위협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A씨는 “의사도 사람이다. 피곤하고 맞는 상황이 겹치면 환자 들에게 어느 정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폭력이 선배들한테서 후배들에게로 대물림된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병원 내 의사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폭력의 대물림’이 자칫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닌가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개선 사항이 많다. 

A씨는 “제도적으로는 전공의 제도를 비롯한 국가의 의사 양성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왔다고 본다”며 “전공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불거지는 것은 최근 병원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면서 그 부담을 의사의 하부 구조인 전공의에게 일방적으로 지우려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더 심각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행을 당한 전공의가 민원을 제기했다가도 본인의 신상에 불이익이 가해질까 봐 속앓이만 하는 경우가 상당 수라는 점이다.

A씨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전공의 폭행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폭행 교수에게 피해를 입은 전공의가 보호되기는 커녕 ‘정직’ 징계를 받았던 교수가 기간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오고 마는 구조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짚었다.

실례로 최근 H대학병원 교수는 상습적이고 몸에 베어있는 폭행 근성이 드러났음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준비하고 있지 않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전공의들이 해당 교수의 복귀를 막기 위해 복지부에 탄원서도 내고 복지부 차원의 지도전문의 자격 일시정지 권고도 다 소용없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A씨는 “전공의들은 누구도 평생 전공의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다. 일단 이 시기만 지나면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불합리와 억울함과 손해를 한 순간에 보상 받는다고 믿고, 또 믿는다. 그 가능성이 현재의 삶을 가혹하게 희생시킨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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