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전공의 등 의료인 백색폭력 대물림 병원계
행정처분·전공의 정원 감축 등 제재···“실질적 개선안 마련 절실”
2018.01.05 12:43 댓글쓰기

[기획 4]이번 전공의 폭행 건은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부산대와 부산대병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내부자 제보를 통해 이 병원 정형외과 A교수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전공의 11명을 상습적으로 무차별 폭행했다고 폭로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도무지 병원 안에서 일어났다고는 믿기 힘든 일이 줄줄이 공론화되자 전국 수련병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해당 병원들은 진화에 나섰고 저마다 예방책들을 내놓기 위해 분주했다. 보건복지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


복지부, 폭행 대응 매뉴얼 배포···의협·전공의협 등도 적극

‘습관적인 두부 구타로 고막 파열’, ‘수술 기구를 이용한 구타’, ‘정강이 20차례 구타’, ‘회식 후 길거리 구타’, ‘주먹으로 두부 구타’ 등 수련병원에서 일어난 비상식적이고도 부당한 사건에 보건복지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병원 안에서의 비인권적인 행위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폭행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고 병원이 폭행 대응 의무를 위반할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특히 복지부는 전북대병원에 행정처분을 내린 이후 최근 언론에 보도됐거나 민원이 접수된 H대병원 등 5개 병원에 대해 조사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임신한 여성 전공의의 시간외 근로에 대해 ‘전공의 종합계획’ 수립 연구를 통해 대책을 마련 중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전공의 수련 규칙을 개정하고, 적정 간호 인력 확보를 위해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만큼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수가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산대병원에 대해 직권으로 실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인권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산대병원 소속 교수들의 전공의 폭행 등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 하다”며 당시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 침해 예방 대책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관계 당국의 효율적 제재도 검토해 이번 직권조사가 전공의 인권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수립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에겐 그나마 손을 뻗을 수 있는 존재인 대한전공의협 의회는 부산대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사건 등을 계기로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 발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협회 내 ‘의료인 폭력 피해 신고센터’를 설치 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 본격적인 센터 운영을 통해 고질적인 전공의 폭행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는 복안이다.

의협 관계자는 “안정적인 수련환경 조성 및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폭력 가해자 교수에 대한 지도 전문의 박탈 요청과 공문을 관련 기관에 발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폭행 방지 인권센터 신설 등 경각심···실효성 미지수

대학병원들도 분위기 쇄신에 나서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선, 전공의 폭행 사건으로 뭇매를 맞은 해당 병원들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전북대병원은 “피해 전공의를 비롯해 참 의료인이 되기 위해 성실히 수련에 임하고 있는 모든 전공의들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수련환경 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 폭행 사건 등 불미스러운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원들의 인권침해 예방을 목적으로 ‘인권센터’를 만들었다. 병원장 직속기구인 인권센터는 인권심의위원회와 인권상담실로 구분돼 있다.

병원 간부와 법무팀 변호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병원 상담 실장과 법무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인권상담실을 운영키로 했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 폭언과 폭행, 성희롱, 성폭력 사례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폭력 사건 재발 방지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 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사를 실시하고 해당 교수나 전공의들에게 징계 조치를 한다고 해도 미봉책에 그친다는 지적이 제기 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4년 이후 국립대학교 병원 교수와 전공의 300여 명이 폭행과 성범죄 등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지만, 수위는 대부분 경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국립대병원 겸직교원(교수) 및 전공의 징계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성범죄와 폭행 등으로 징계 받은 겸직 교직원과 전공의는 총 313명이었다.

이 가운데 254명(81.1%)는 공무원법상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훈계, 주의, 경고 조치만 받았다. 경징계는 41명(13.1%), 중징계는 18명(5.8%)이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징계 수위인 파면은 한 건도 없었다.

김병욱 의원은 “교수 뿐 아니라 전공의들도 후배 전공의나 간호사, 환자들을 대상으로 금품 갈취, 폭행, 폭언, 성희롱을 저지르는 등 의료인의 ‘백색 폭력’이 대물림되고 있다”며 거듭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그 동안 신고도, 제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사가 되겠다는 꿈 하나로 이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법적, 제도 적으로 해결책 마련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도 “전공의들의 현실에 맞는 실질 적인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폭행 등이 심각한 경우 법적 재정비를 통해서라도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관련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대책을 점검,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조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수련이 끝나도 관련 학회 등에서 만날 수밖에 없고 개업을 해도 영향이 있어 교수나 선배들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북대병원 등이 폭행 사실을 접수했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거나 해당 교수를 처벌하지 않은 것도 이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전공의 개별면담을 통해 폭행 사건을 축소코자 하고 공공병원인 국립대병원이 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교수의 전공의 폭행을 외면하면서 더 큰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정 의원은 “교수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전공의를 상습적으로 구타한 것 자체가 문제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병원의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더 문제”라고 말했다.

전공의협의회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된 것은 다행이 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전공의 대부분이 사례 공개를 기피해 애를 먹고 있다”며 “신고를 하는 제보자나 피해자들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운다”고 토로했다.

그는 “단순한 사례 정황만 알려져도 금방 누가 제보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의료계가 좁아서 사례 수집에 어려움이 많다”며 “복지부는 물론 국회 차원의 실질적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갈 길은 멀어 보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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