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계 적폐 개선' 대세···복지부 권한 제한적
국회 포함 범정부차원 방안 모색, “새로운 문화·분위기 형성돼야”
2018.01.09 06:08 댓글쓰기

[기획 5]최근 몇 년간 ‘갑질’은 적폐로 규정됐고 손질되고 있다. 지금도 그 작업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열하기도 번거로운 대한민국의 여러 갑질은 대통령도 바꾸고 대기업도 바뀌게 만들었다. 넘어서기 힘든 벽이라고 생각했던 영역이 쉽게 무너지고 새롭게 판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그만큼 갑질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악(惡)’이라는 인식이 크다. 의료계도 이 범주에서 논외가 아니다. 생명을 다뤄야 하는 사명감이 있기에 일반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공간에 놓여있었지만, 갑질과 묶이는 순간 그 고결함은 땅바닥에 떨어진다. 전공의 폭행, 간호사 장기자랑 등 최근 불거진 사건에 대한 사슬을 풀지 못하면 의료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도는 추락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각 병원들의 내부적 논의가 지속되고 있지만 자정작용이 효과를 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행법상 아직은 미흡한 법적, 제도적 기준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의료계에 불거진 갑질문화 등 대책 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복지부도 문제를 인식했고 교통정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혔다. 그러나 아직은 미적지근한 상태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대표적으로 전북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폭행 사건에 대해 복지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사례를 들여다보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전북대병원 1년차 전공의가 지난 2016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선배로부터 폭행에 시달렸다는 문제가 불거졌고 사실임이 드러났다.

또 당직표 허위작성 사실까지 확인돼 복지부는 2년간 정형외과 전공의 모집 불가라는 판정을 내렸다.

복지부 차원에서 처분을 내리기는 했지만, 1년간 상황을 지켜보고 전북대병원 정형외과의 전공의 수련환경이 개선된 것으로 판단되면 징계조치를 풀 것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결국 규제할 수 있는 영역은 의과대학 정원 문제에 손을 대는 것인데, 단서조항이 붙으면서 강력한 처분이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형태로 변질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복지부가 전북대병원에 내린 100만원 과태료 처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사회적 이슈로 번진 데다가 당직표 허위작성 등 문제도 맞물려 있는데 금액 자체가 너무 적게 책정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공의 A씨는 “사건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 처분이다. 쓰레기 종량제를 위반해도 개인에게 1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상황인데, 전공의법 위반에 대한 처분은 적절치 못한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전공의 B씨 역시 “전공의들의 치욕적인 상황을 묵과 하는 형태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처분이 전부라면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전공의 수련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 했다. 

전공의 문제는 전공의 모집 제한 등 패널티를 부과할 수 있지만 익히 잘 알려진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 문제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중론이다.

물론 복지부는 대한병원협회에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뚜렷한 제재조치가 부여되지는 않았다. 

추후 방향성은 적극적 패널티 부여
결국 복지부 소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미흡한 탓이다. 특히나 간호사 장기자랑 문제 등은 타 부처 소관사항 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개입이 어려운 상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질문화 개선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마당에 복지부도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복지부는 전공의 폭언과 폭행으로 처분을 받았던 모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의 지도전문의자격 박탈을 검토해 줄 것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 속 교수는 전공의 폭행사건으로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고, 현재 처분이 마무리됐지만 아직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않은 상태다. 전공의협의회는 A교수 복직을 앞두고 그의 지도전문의 자격을 박탈해 줄 것을 정부 측에 요청했고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복지부는 전공의나 간호사 등 의료인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하는 등 부당행위를 하는 병원에 대해서는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등 재발하지 않도록 힘쓸 계획임을 강조하고 있다.  

병원장 과태료는 물론 의료질평가지원금 삭감방식 등 구체적 안건도 논의되고 있다. 의료질평가지원금은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을 의료 질과 환자 안전, 공공성, 의료전달체계, 교육수련, 연구개발 등 5개 영역 59개 평가지표로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것이다.

병원경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의료질평가지원금을 연계 시켜 비인격적 처우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아울러 간호사협회가 만든 인권센터를 통해 접수된 인권침해 신고사례나 민원사항은 진상을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병원 내 부당노동행위는 고용노동부와 협조해 처벌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가해 교수 지도전문의 자격 박탈 및 병원에 대한 수련과목 지정 취소 규정 신설 등 다각도의 대책을 강구 하고 있다. 단숨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인권문제에 대해 병원들이 경각심을 갖고 자정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복지부에 이어 노용노동부도 관행상 이어져 온 병원계의 잘못된 갑질문화 개선을 추진한다. 

고용노동부는 신입 간호사 초임 미지급, 조기출근시 연장 근로 수당 미지급 등으로 논란이 된 일부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12월부터 근로감독을 실시 중이다. 대상은 서울대병원과 부산의료원, 고려대안암병원, 건국대병원, 동국대일산병원, 울산대병원 등 6곳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번 근로감독은 그간 관행처럼 이어져 온 병원업종의 잘못된 근로환경을 개선해서 직장 내 갑질문화를 근절하고 의료현장에 노동이 존중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부 역시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개별적 근로관계 전반을 살필 예정이다. 또한 일부 종합병원에서 문제가 됐던 신입 간호사 초임 미지급, 조기출근과 행사 등 참여시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성희롱 등을 중점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국회 역시 이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과 보건복지 위원회 정춘숙 의원,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 상임위는 다르지만 해결책을 찾는데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공의 폭행과 성폭력, 간호계 인권문제를 개선하기에는 의료법이나 전공의특별법 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육부나 고용부 소관 법률을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데 중지가 모아진 것이다. 

유은혜 의원은 “교육부 소관 법률을 통해 대학병원 지도 전문의인 교수들의 폭행과 성폭력을 제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춘숙 의원도 “현행 전공의특별법으로 대학병원 교수를 처분하는데 한계가 있다. 교문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잘못된 수련제도를 개선하는 데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적 틀 마련하고 내부 자정작용 활발해져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연이어 발생한 전공의 폭행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돼 이어져오고 있다. 이는 비인권적인 행위이며, 무엇보다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 근본적인 대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대한간호사협회는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의료 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인권침해를 막고 간호사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고 있어도 쉬쉬하기 급급했던 의료계 갑질문화가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번졌다. 갑질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커진 분위기와도 맞물려 변화의 시기는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련의 변화를 바라 본 서울소재 수련병원 전공의는 “법이 촘촘해지고 처분이 내려지면 분명 변화는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까지 개선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료계 내부적으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 간호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2차 피해를 받지 않고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의료인들의 인권문제가 개선돼야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법적, 제도적 규제도 중요하지만 의료현장에서 갑질이 사라질 수 있도록 새로운 문화와 분위기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송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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