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선진료 연루 의사들의 뻔뻔한 '거짓말'
'노블리스 오블리주' 외면, 김영재·정기양·이임순 '위증 혐의' 기소
2017.03.25 06:25 댓글쓰기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의 위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대부분의 의과대학 졸업식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이 따른다. 그 선서식에서 예비의사들은 위 내용을 선서하고 비로소 의사가 된다.


의학의 아버지, 혹은 의성(醫聖)이라 불리는 고대(古代)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377)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의사들의 행태를 봤다면 어떨까.


최고의 전문지식인, 혹은 사회지도층이라 볼 수 있는 의사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카데바 인증샷 사건을 비롯해 수면제 성폭행, 프로포폴 불법 투여 등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행태가 언론에 의해 수면 위로 떠오른 데 따른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의사들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또다시 의사 전체의 신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없었다.


그들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당당히 밝힌 증언은 특검을 지나자 위증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특검, 김영재 원장 정기양 교수 등 현직의사 4명 기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3월 6일, 90여 일간의 수사를 마친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특검은 최순실 씨(61),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49),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51) 등 13명을 구속 기소했다. 또한 이영선 청와대행정관(38) 등 1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특검이 재판에 넘긴 30명의 피의자 중 4명은 현직 의사다. 모두 청와대 비선진료, 이른바 ‘의료농단’에 연루된 이들이다.


특검은 보안손님으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알려진 김영재 원장(57)을 뇌물공여·의료법 위반·위증·마약류 관리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석 기소했다.


2월 28일 특검의 마지막 정례 브리핑에서 특검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수사를 통해 김 원장이 박 대통령을 직접 진료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힌바 있다.


박 대통령에 보톡스·필러 시술을 한 것으로 드러난 정기양 연세대 피부과 교수(58)와 최순실 일가의 주치의 격으로 알려진 이임순 순천향대 산부인과 교수(54)는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또한 대통령자문의로 위촉되기 전부터 박 대통령을 비선진료한 혐의의 김상만 전 차움의원 의사(55)도 의료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박영수 특검은 이번 의료농단에 대해 “이 사건은 국가안보와도 직결되는 대통령에 대한 공적 의료체계가 붕괴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이들에 대한 징계는 대한의사협회를 통해서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특검 결과에 따라 연루된 의사들을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수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물의를 일으켜 의료계 명예를 떨어뜨리거나, 현행 의료법을 위반한 의사 등은 윤리위원회의 징계 대상자가 된다. 징계는 의협 회원자격 정지, 행정처분 의뢰, 위반금 부과 등으로 집행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결산청문회까지 총 7차례 열린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수많은 증인과 참고인이 국민 앞에 섰다.
 

진실만 말할 것을 선서한 그들의 증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로 드러났다. 의료농단에 연루된 의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윤리를 지키겠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줄만 알았던 의사들의 거리낌 없는 거짓말은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들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트렸다.


김영재 원장
지난 12월 14일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는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영재 증인은 대통령 안면 시술한 적 없습니까?”
김영재 원장 “없습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혀 없습니까?”
김영재 원장 “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 번도 없습니까?”
김영재 원장 “네, 없습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통령 얼굴에 필러 시술은 누가 한 것으로 보입니까?”
김영재 원장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김영재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안면시술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또한 청와대에는 수술 시스템이 없고, 수술 전후가 크게 차이나 대통령에게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진실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2월 22일 특검은 자택과 건강보험공단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 자료와 병원 직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김영재 원장이 청와대에서 최소 3~4차례 필러와 보톡스 등을 시술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김영재 원장이 청문회에서 증언한 내용 전체를 뒤집는 자백이었다.


정기양 세브란스병원 교수
같은 날 정기양 세브란스병원 교수도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출석했다.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것(리프팅실)을 시술하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까?”
정기양 교수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정 교수는 ‘뉴 영스 리프트’ 수술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당시 의혹이 있던 의사들이 모두 시술을 부인하자 청문회장에 있는 의원들은 “시술 자국은 있는데 시술한 의사가 없다니”하고 탄식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정 교수 주장은 특검 수사를 거쳐 거짓말로 들통났다. 특검은 정 교수가 지난 2013년 3월~8월, 박 대통령에게 필러 등을 3회 시술하고 '뉴 영스 리프트' 시술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운 것을 밝혔다.


정 교수는 지난 2월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위증 사실을 시인했다. 당시 김영재 원장에게 실 리프팅 시술을 배워 함께 시술한 내용과 함께 대통령에게 필러와 보톡스 시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특검은 구체적 계획을 세운 증거로 정 교수가 대통령 시술용 리프팅실 확보를 위해 이병석 당시 대통령 주치의와 논의했던 문자 메시지를 확보해 재판에 넘겼다.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교수
뻔뻔한 거짓말로 모두를 속이려 했던 이임순 순천향대병원 교수도 결코 위 두 사람에 뒤지지 않는다.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이임순 교수의 소개로 알았다고 인터뷰했죠? 맞습니까?”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맞습니다.”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 “이임순 교수님, 그런 적 없다고 말씀하셨죠?
이임순 교수 “그런 적 없습니다.”


서 원장은 “이 교수 발언이 사실이 아니며 김영재·박채윤 부부를 알게 된 것이 이 교수의 전화연락이 계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서 원장에게 전화한 적이 없고 박채윤 씨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청문회장에서 증인끼리 진실공방을 벌이는 진귀한 풍경이 빚어진 것이다.


특검은 공식일정 마지막 날인 2월 28일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이 교수를 불구속 기소하고 공소장을 통해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부탁을 받아 박채윤을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에게 소개한 사실이 있음에도 없다고 위증했다”고 밝혔다.


의료법 위반 김상만 전 대통령자문의···서창석 원장도 논란

김상만 전(前) 대통령자문의는 차움의원에서 재직하던 2011년~2014년, 최순실·최순득 자매의 이름으로 박 대통령에게 주사제 등을 처방한 사실이 드러나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위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청문회에서 그는 주치의 등 청와대 공식 의료시스템 통제 없이 수시로 대통령 관저를 드나들었고 자문의 위촉 전 박 대통령에게 태반주사를 놓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만 “대통령에게 처방한 백옥주사는 해독이나 미용 목적이 아니다”라고 대답한 부분에 대해서는 향후 추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기소되지 않았지만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또한 거짓말 논란에서 빠질 수 없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위증을 주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선임자인 오병희 전(前) 서울대병원장이다. 오 전 원장은 12월 14일 의료농단 청문회장에 재정증인으로 나타났다.


오 전 원장은 "2015년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였던 서창석 원장이 내게 먼저 청와대에서 '김영재 봉합사'의 중동 진출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고 전해왔다"며 “이에 따라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자리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 주장은 앞서 서 원장의 "오 전 원장이 다른 교수를 통해 안종범 수석과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발언에 배치된다.


전 국민이 이번 청문회와 특검을 통해 거짓말을 반복한 의사들의 행태를 지켜봤다. 밥 먹듯 거짓말을 일삼는 의사에게 자신의 건강, 혹은 생명을 맡길 국민이 있을까.


의료계 한 관계자는 “바닥까지 떨어진 의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의사 개개인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당시의 자신을 돌아보고 윤리의식을 재무장할 필요가 있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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