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고 기준도 까다로운데 한국에 왜 팔아'
인조혈관 점유율 1위업체 '철수' 강공, '외국서 심장수술 받아야 되나'
2017.05.01 12:18 댓글쓰기
[기획 下]고어메디칼코리아는 비중심혈관계 PTFE 재질 인조혈관 공급의 마켓리더다. 국내 시장 공급의 60%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선천성 복합심장기형 소아환자 수술에 필요한 3.5mm~5mm 크기의 인조혈관을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업체는 고어메디칼코리아가 유일했다.
 
그러나 2월 말 본사의 사업 철수 통지 이후 전국 병원을 돌며 인조혈관 제품을 공급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뿔뿔이 흩어졌다. 업체 측에 연락을 하니 “의료기기 담당자는 남아 있지 않다. 모두 퇴사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사가 결정을 내릴 당시 고어메디칼코리아에 몸을 담고 있었던 한 관계자는 “구체적 설명이 없는 갑작스런 통지였다. 우리도 알게 되자마자 병원에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美FDA 승인 받은 제품인데도 까다로운 기준 적용"

고어메디칼 본사는 "굳이 한국에 제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수익에 비해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하더라. 이미 FDA 승인을 받은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까다로울뿐만 아니라 가격까지 떨어지니 사업성을 고려해서 철수한 것 같다”고 답했다.
 
가장 큰 요인은 인조혈관 보험가격의 지속적 하락이다. 지난 2010년 이뤄진 사후관리 차원의 재평가 과정에서 여러 품목의 보험상한가가 단일 보험가를 기준으로 책정돼 상대적으로 수입원가가 높은 제품들은 가격이 인하됐다. 

업계 주장에 의하면 PTFE 재질 링타입(20cm이상 40cm미만)이 25.23%, 스트레이트 타입(20cm이상 40cm미만)이 17.83% 등 대폭 삭감됐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국내 보험상한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것도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본사 입장에서 꺼려지는 부분이다.

고어메디칼이 판매했던 품목 중 스트레치타입의 보험상한가는 2016년 기준으로 46만4890원이다. 미국(82만1825원)이나 중국(147만4616원)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대만 등 아시아 내 국가들이 우리나라의 보험제도를 기준으로 삼아 수가를 책정하는 것을 고려할 때 한국에 제품을 계속 공급하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낮은 보험상한가를 부여받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에 진출한 다른 업체들도 계속되는 가격 하락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고어메디칼과 같이 비중심혈관계 인조혈관을 공급하고 있는 마퀘트코리아 측은 “재평가 결과에 따라 2012년 보험가가 삭감된 후 본사와의 합의를 통해 타격을 입으면서까지 공급을 계속했지만 지난해에도 또 인하 결정이 내려졌다”며 “관리비용까지 고려하면 손실은 더욱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심혈관계 제품을 취급하는 한국테루모 측도 “제품 판매사에 최소한의 이윤과 운영비용은 보장될 필요가 있다”며 “매년 오르는 물가상승률과 각종 비용 증가 등 업체 측 입장도 보험급여정책에 반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조혈관 품목의 특수성이 제대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업체 측 입장이다.
 
인조혈관은 사용 부위별로 길이 등이 다양해 총 400여개 가량의 품목이 존재한다.

이 중 약 300가지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힌 한국테루모 관계자는 “인조혈관은 4등급 중요치료재료이고 추적관리대상 품목이므로 고비용을 들여 전문적 직원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며 “환자 부위별 병증과 특성에 맞춘 모든 혈관 종류를 갖춰두고 대비해야 하는 등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술실 내 재고수량을 능동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워 유효기간 확인도 쉽지 않고 수탁품 손실분을 책임지는 등 제품충당에 따른 비용 절약이 여의치 않은 와중에 보험가까지 깎이니 납품조차 힘들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현재 국내에서 전량 수입되는 비중심혈관계 제품을 취급하는 곳은 고어메디칼과 마퀘트코리아다.

중심혈관계 또한 마퀘트코리아와 한국테루모 두 군데만 제품을 다루고 있다. 고어메디칼의 철수로 대표되는 이번 사태는 당장 대체품이 없는 소아환자 수술용 인조혈관뿐만 아니라 전반적 공급 난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마퀘트코리아 관계자는 “인조혈관은 해외에서도 규정이 까다롭고 시장 자체가 좁은 등의 요인 탓에 생산이 활발하지 않다”며 “대체품목을 취급하는 업체 한두 곳으로는 안정적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 "역차별 한국 심장수술, 환자 살릴 수 있는 여건 절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진료 최일선에 있는 의사들이다.

이들은 “정부가 비정상적으로 수가를 조정하다 보니 결국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한국 의료기술이 자꾸만 뒤로 또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의료기기도, 제약도 역차별을 받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정말로 한국의 심장수술은 외국에서 받아야 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에 소아 심장수술을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랜 시간 국가적 관심과 지원 부족으로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소아 심장수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1984년 당시 영부인인 이순자 여사에 의해 새세대심장재단이 발족하면서 여기가 중심이 돼 선천성심장병 어린이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이후 의료진들의 지난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선천성심장기형 수술은 ‘한국이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15년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김웅한 교수팀이 선천성심장기형 수술을 받은 환자의 15년 생존율을 분석한 결과, 김웅한 교수팀 73% vs 일본 68% vs 미국 57%로 월등히 앞서기도 했다.
 
김웅한 교수는 이번 인조혈관 공급 중단 위기에 더욱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하는 것도 좋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굳건하게 지켜온 한국의 임상기술 명성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궁 내 태아의 심장 형성 및 발달 과정 중 문제가 생겨 심장 기형이 발생하거나 기능 장애를 안고 있는 소아심장질환은 아기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환자’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된다.
 
이런 3000~5000여명의 어린이 환자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 의료진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흉부외과학회 심성보 이사장은 “소아들은 성인과 달리 수술뿐만 아니라 사후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며 "부디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로 공급 중단 위기에 빠진 인조혈관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해진·정숙경 기자 (hjhan@dailymedi.com)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